과학기술 연구개발(R&D)에서 모험 연구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성실 실패’를 인정해 도전적인 연구문화를 정착시키지 않는 한 노벨상이든 혁신성장이든 요원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월 1일부터 사흘간 발표되는 노벨과학상에서 올해도 행운의 여신이 우리를 비껴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 20조원을 돌파하는 국가 R&D 체계에서 관리 위주의 ‘복지부동’ 문화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을 지낸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우리 과학자들이 올해 노벨상 후보군에 접근했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정부 과제평가 방식이 도전적 과제를 장려하기보다 오히려 가로막고 있고 임팩트(영향력) 있는 연구성과가 이어지게 하는 쪽보다는 과제 기간에 적당한 목표치만 달성하는지 보는 식”이라고 질타했다.
연구 목표치를 높게 잡고 덤빈 연구자는 실패 판정을 받을 확률이 높고 그렇지 않은 연구자가 성공으로 분류되는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가 R&D 과제가 성공률은 98%지만 성과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역설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연구자가 꾸준히 도전적 목표를 세우고 한 우물을 팔 수 있게 해야 하는데, R&D 과제 선정·평가 과정에서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대학·기업의 연구자가 할 수 있는 목표만 낮춰 제시하고 정량평가(특허·논문·기술료)에만 의존해서는 도전적인 연구가 이뤄지기 힘들다. 물론 기초과학에 투자한 지 30여년이 되며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 유망한 과학자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노벨상 족집게로 통하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최근 발표한 ‘2018년 피인용 우수 연구자’ 17명의 명단에는 아직 한국 과학자가 포함돼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일본이 22명, 중국이 1명을 배출했지만 우리의 경우 지금의 국가 R&D 시스템에서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고 한 가지 테마로 오랫동안 연구하지 못해 노벨상을 받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