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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들이 본 우리 의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박홍근 의원이 문 대통령과 악수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박홍근 의원이 문 대통령과 악수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기자의 꿈을 꾼 고흥 소년, ‘박도덕’

전라남도 고흥군 도덕면, 박홍근 의원이 태어나 스무 살까지 자란 곳이다.


바닷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시골 소년의 낭만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방학에도 농사일을 했고, 겨울에는 김 양식까지 도왔다.

지금도 고흥에 계신 홀어머님을 만나 뵈러 가면 마늘 농사를 거든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박 의원은 공부를 썩 잘했고, 학교생활도 열심이었다. 초등학교 3km, 중학교 8km를 통학하면서 매일 같이 소아마비 친구의 가방을 들어줬다.

하루는 당시로서 큰 돈인 1,000원짜리 지폐 9장을 발견하고, 300미터 떨어진 파출소로 달려가 주인을 찾아달라고 신고한 적도 있다.

고향 마을 이름 ‘도덕’처럼 박홍근 의원의 어릴 적 별명도 ‘박도덕’이었다.

박홍근 의원의 유년시절 모습.박홍근 의원의 유년시절 모습.


◇학생·시민운동에 투신한 원칙주의자 박홍근

고향을 떠나 경희대에 진학하면서 국문학도가 됐다. 광주 망월동 묘역과 학생 군사훈련을 다녀오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눈을 뜨고 학생 운동에 몸 담았다.

경희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대행을 지낸 박 의원은 친구와 후배들이 무서워할 정도의 원칙주의자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받은 장학금 수 십 만원을 친구의 등록금으로 보태줄 정도로 따뜻한 사람이다.

학생운동을 마칠 때 쯤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시대적 격변기를 맞았다. 새로운 방식의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우상호 전 원내대표 등과 함께 ‘청년정보문화센터’를 만들었다.

박홍근 의원이 한국청년연합(KYC) 공동대표 시절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박홍근 의원이 한국청년연합(KYC) 공동대표 시절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내 아이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 중랑

고흥이 나아준 곳이라면 중랑은 키워준 곳이다. 동대문구에서 수 년간 옥탑방 생활을 하다가, 중랑구로 거처를 옮겨 가정을 꾸렸고 사랑스러운 딸 아이도 얻었다.

박홍근 의원이 자신과 가까운 박원순 시장의 옥탑방 체험을 반대했던 이유도 고달팠던 옥탑방 생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딸 아이의 고향이자, 이제는 제2의 고향인 중랑 지역주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박홍근 의원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진심정치

정치는 꿈도 꾸지 않았던 박홍근 의원에게 2007년은 특별한 해였다.

열린우리당이 갈등과 분열을 거듭하면서 “이대로는 대선 후보도 못낼 것 같다. 우리가 들어가 정치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시민운동 내부에서 터져나왔다.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있던 가까운 선배들에게 “왜 그렇게 밖에 못하느냐고” 따졌던 박 의원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당에 들어와 대표 비서실 차장과 전국청년위원장을 하며 현실정치를 익혔다.

때로는 여러 낯부끄러운 모습을 보며 흙탕물에 몸을 잘못 담갔다는 후회도 했고, 시민사회로의 복귀를 심각히 고민하기도 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2의 고향 중랑 발전에 견인차가 되고자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구청장에 도전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 때부터 지역활동에 더 열심히 참여했다. 경쟁 후보를 찾아가 격려하고 진심을 다해 주민을 만났다.

2012년 총선 결과 854표차(0.6%) 신승. 요행수에 기대지 않은 묵직한 진심이 통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연설하고 있는 박홍근 의원.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연설하고 있는 박홍근 의원.


◇의정활동 평가 1등 국회의원

초선 임기 4년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보내면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대입제도 개편 등 굵직한 현안을 다루며 교육단체와 공무원, 기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의원으로 손꼽혔다.

NGO 단체가 전체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 19대 국회 의정활동 종합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대 국회에서는 가장 권위 있는 국회의장 주관의 입법·정책 우수의원 상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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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가 처음 출범하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로 차출됐다. 대선을 앞두고 공정한 언론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박 의원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당의 부름이었다. 정권교체 후에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여당 원내수석부대표라는 중임을 맡으며 국회운영위원회 간사를 겸직했다. 야당의 공세를 논리와 실력으로 방어하며 야당의원들을 압도했다.

◇실력 정치의 원동력, 성실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에 의원 대부분이 자리를 비웠지만, 박홍근 의원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피감기관 직원의 뇌리에 남은 모습이다.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내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기자들 문의에 성심껏 답변해줬다.

곧바로 연락을 줄 수 없을 때는 차량 이동 중 짬을 내서라도 반드시 회신해줬다.

박 의원이 원내수석부대표를 내려놓았을 때 기자들이 붙여준 별명은 ‘갓홍근’.

상대방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몸에 밴 성실함에 대한 평가였다.

박홍근(왼쪽 두번째) 의원이 여당 원내수석부대표 시절 야당 수석부대표들과 함께 정세균 국회의장과 비공개회동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박홍근(왼쪽 두번째) 의원이 여당 원내수석부대표 시절 야당 수석부대표들과 함께 정세균 국회의장과 비공개회동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홍근 의원의 정치는 현장에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

박홍근 의원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국회 최초로 청년 분야 의원 연구단체인 ‘청년플랜2.0’과 ‘동물복지국회포럼’을 만든 것도, 현장과 호흡하는 생활정치에 대한 신념 때문이다.

연말부터는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을 맡아 ‘을’들의 현장을 찾아갈 생각이다.

보좌진들에게 박홍근 의원은 어떤 사람일까?

진심과 실력, 성실, 모범의 삶 자체가 우리의 교과서다.

[박홍근 의원은 누구]

△소속정당 : 더불어민주당

△정계 입문 시점 :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

△약력 ▲전라남도 고흥 출생 ▲순천효천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환경행정학 석사) ▲경희대학교 총학생회장(前) ▲한국청년연합 공동대표(前) ▲ 대한민국 19대, 20대 국회의원(서울 중랑을)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 겸 전국청년위원장(前)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비서실장(前) ▲유네스코 한국위원(前)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장(前)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前) ▲국회 운영위원회 간사(前)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前) ▲동물복지국회포럼 공동대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거쳐온 상임위 :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회운영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특이 이력 ▲경희대학교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대행 ▲더불어민주당 국정감사 우수의원상 6년 연속 수상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선정 우수의원상 5년 연속 수상

△대표 발의 법안 및 국회 활동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권 보장, 임대차분쟁조정위 설립)

▲단말기유통법 일부개정법률안(휴대폰 지원금 상한데 폐지와 위약금 상한액 한도 고시)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투명성 확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 / 과학기술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동물을 물건과 달리 특수한 대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명시)

▲청년정책기본법안(청년들을 위한 국가 책무 규정)

▲청년첫일자리지원법안(청년실업해소를 위한 지원책 마련)

김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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