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안병민의 '경영 수다'] 곰표, 올드보이의 화려한 귀환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포춘코리아 2018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1955년 등록된 밀가루 브랜드 ‘곰표’가 변신을 꾀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브랜드 전통과 오리지낼리티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2030 세대들이 선호하는 ‘문화브랜드(Culture Brand)’로 거듭나겠다는 이른바 ‘브랜드 재활성화(Brand Revitalization)’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글 안병민◀




곰표 레트로하우스 홈페이지 화면.곰표 레트로하우스 홈페이지 화면.



하얀 설원에 단정하게 내려앉은 건물이 인상적입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모던한 이미지입니다. 고즈넉한 미술관 느낌입니다. 1층에 들어서니 ‘브랜드관’이 나옵니다. 브랜드 히스토리와 철학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지하 1층은 ‘제품관’입니다. ‘레트로 굿즈(Retro Goods)’를 파는 공간입니다. 초창기 브랜드 이미지들을 활용한 스케치북, 메모지, 에코백 등을 팔고 있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조합이지만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끕니다. 다음은 지하 2층 ‘쇼핑관’입니다. ‘레트로’라는 콘셉트에 맞춘 소형가전을 판매하는 공간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지하 3층 ‘전시관’은 아직 오픈 전이네요. 지하 4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카페공간’이 나옵니다.

해당 브랜드와 레트로를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상과 지하를 합쳐 총 5개 층의 뮤지엄이 ‘온라인’ 공간에서 개관을 했습니다. 이름 하여 ‘곰표 레트로하우스’입니다.

‘곰표’는 1955년에 등록된 상표로 ‘샘표’, ‘부채표’, ‘백설표’ 등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적 장수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대한제분이 밀가루를 생산·판매하며 붙인 상표가 바로 곰표죠. 1955년생이니 나이로는 환갑을 훌쩍 넘겨 반세기 이상 우리와 함께 한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열흘 붉은 꽃 없고’, ‘십년 가는 권력 없다’ 했습니다. 곰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당 분야 선도기업으로 각광받던 곰표 또한 그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친근한’, ‘믿음직한’, ‘전문성’ 같은 긍정적 이미지 이면에서 ‘오래된’, ‘고지식한’ 같은 부정적 고객 인식이 야금야금 곰표의 브랜드 자산을 갉아먹은 겁니다. 이른바 ‘브랜드의 노후화’입니다.

브랜드 노후화는 비단 곰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수의 브랜드들이 당면했거나 당면할 수밖에 없는 이슈입니다. 사람에게도 수명이 있듯, 브랜드도 그렇습니다. 천년 만년 가는 파워브랜드로 키워나가기 위해선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브랜드 재활성화(Brand Revitalization)’라는 혁신 말입니다. 브랜드 재활성화란 고객 기호의 변화, 신기술의 등장 등 환경변화에 따라 브랜드자산이 약화됐을 때, 브랜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집이 낡으면 개보수를 하듯, 브랜드 역시 재활성화를 통해 신선도를 유지하는 겁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카콜라입니다. 코카콜라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지속적으로 광고캠페인을 진행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상쾌한 그 맛 코카콜라(It‘s The Real Thing)”에서부터 “코카콜라와 함께라면 문제없어요(Things Go Better With Coke)”, “코카콜라와 함께 웃어요(Have A Coke And A Smile)”, “코카콜라 그것뿐(Coke Is It!)”, “언제나 코카콜라(Always Coca-Cola)”, “행복을 열어요(Open Happiness)”에 이르기까지 코카콜라의 캠페인 슬로건이 계속 바뀌어 온 배경입니다. 박카스도 있습니다. 1961년 출시 이후 국민 음료로 사랑받아온 박카스가 젊은 층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합니다. ’젊은 나‘가 아니라 ’나이 든 아저씨‘가 마시는 음료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이에 동아제약은 새로운 광고캠페인을 꺼내 듭니다. ’젊은날의 선택‘ 캠페인입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밝은 분위기로 풀어내면서 박카스의 낡은 이미지를 털어냈습니다. 박카스 성공의 2막은 그렇게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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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곱은 빨리 달려야 하고.”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말입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달려야 합니다. 주변의 세계가 마치 러닝머신처럼 연동해 움직이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고 싶으면 세상의 변화 속도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 자리에 멈춰 있는 게 아니라 뒤로 밀려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붉은 여왕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브랜딩에도 적용됩니다. 한번 파워브랜드라고 해서 영원한 파워브랜드일 수 없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합니다. 코카콜라나 박카스의 광고캠페인은 이런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해줍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브랜드 재활성화에 있어 기존의 브랜드 자산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잘못하면 있던 자산마저 날아가고 맙니다. 섬세한 기획이 없는 난개발 식의 브랜드 재활성화는 고객 이미지 상에 혼동만 줄 뿐입니다. 결과는 나락입니다. “Change it, but don’t change it.” 스포츠카 명가 포르쉐의 브랜드 철학입니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인 혁신을 하겠다는 의미와 함께,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브랜드의 고갱이 만큼은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를 말하는 명품브랜드 에르메스도 그렇고 “Never different, but always changing”을 이야기하는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니 변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컨대, 기본을 지키되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곰표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60년 세월 동안 대한민국 주부들의 오랜 벗이었던 곰표는 이제 젊은 층을 겨냥합니다. ‘필수’, ‘기초’라는 기존의 브랜드자산을 지렛대 삼아 ‘즐거움’, ‘재미’라는 요소를 추가하겠다는 전략입니다. 노후화된 곰표 브랜드의 이미지를 재해석해 젊은 분위기로 변신·확장시키는 작업입니다. 그 일환으로 곰표 하면 생각나던 캐릭터 ‘하얀 색 북극곰’을 패션아이템인 티셔츠나 에코백에 큼지막하게 새겨넣어 이벤트 경품으로 활용했고, 해당 이벤트 경품을 배송할 때 20㎏ 밀가루 포대에 함께 넣어 보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시장이 반응합니다. 중년 부부의 주방 속 찬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곰표 브랜드가 인스타그램을 위시한 소셜미디어 등 소위 ‘젊은 공간’에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올드보이의 화려한 귀환입니다. 위트와 재미와 반전을 겸비한 브랜드 재활성화 사례입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이제 곰표는 기존 브랜드 전통과 오리지낼리티를 강조함과 동시에 2030 세대들이 선호하는 ‘문화브랜드(Culture Brand)’로의 변신을 준비합니다. 레트로, 즉 복고라는 키워드를 세련되게 재해석해 젊은 층의 생활, 문화 전반에 녹아들겠다는 브랜드 혁신 전략입니다. 곰표 레트로하우스는 그 혁신의 베이스캠프입니다.

유연함이 확고함을 이기는 세상입니다. ‘확신’과 ‘집념’은 잠시 넣어놓고 ‘혁신’과 ‘재미’로 무장해야 합니다. 대한제분 곰표 브랜드의 혁신은 그래서 재미납니다. 그 재미가 시장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하제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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