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토요워치]性 비하·정치 선전…자극적 게시글 범람…혐오 놀이터 된 커뮤

■'이념의 장' 된 커뮤니티




“저 미친X, 신상 털고 죽여버려.” 지난 8월 한 고등학생은 난데없는 ‘남혐’ 논란에 휩싸였다. 사건의 발단은 한 퀴즈 프로그램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만나보고 싶은 사람을 쓰라”는 질문을 받은 학생이 세종대왕이라고 답한 뒤 ‘한남(한국 남자의 준말)’이라는 비하 발언을 덧붙여 썼다는 것. 여학생이 답을 쓴 화이트보드를 들고 있는 캡처 사진은 일간베스트를 포함해 락사커, 도탁스,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갤러리 등 ‘남초’ 커뮤니티로 불과 수시간 만에 퍼져나갔다. 학생의 신상정보가 공개되고 해명을 요구하는 글이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을 뒤덮었다. 이 학생이 쓴 단어가 한남과 글자 모양이 비슷한 ‘만남’이었다는 증거가 나오자 이들은 일제히 게시글을 삭제하고 입을 닫았다. 이미 학생이 살해 위협을 포함해 입에 담지 못할 인신공격을 받은 뒤였다.

혐오가 놀이가 됐다. 상대 성(性)을 비난할수록 커뮤니티 내에서 인정받고 많은 댓글과 호응을 얻으며 레벨(회원등급) 시스템에서 보상받는다. 등급이 높아지면 성취감과 함께 더 많은 게시글에 대한 접근 권한이 주어진다. 일종의 게임이다. 이 게임은 커뮤니티 회원들로 하여금 사실 ‘주작(조작)’을 일삼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선을 넘고, 갈등에 불을 붙이도록 종용한다. ‘커뮤 문화’가 확산하면서 일부 극단적 성향의 커뮤니티와 회원들의 행태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많은 댓글·호응땐 ‘회원등급 UP 시스템’ 보상

인신공격·조작글 등 갈등 불 붙여

극단적 성향 일베·워마드, 범죄도 야기




특정 지역 비하로 대표되는 지역주의와 함께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고인 모독, 여성 비하 발언을 일삼는 일간베스트(일베)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노인을 성매수한 뒤 인증사진을 올린 ‘박카스 할머니 사건’이 논란이 됐다. 최초 유포자였던 서울 서초구청 공무원이 음란사이트에 올린 나체사진을 일베 회원이 재차 퍼트렸다. 두 피의자의 동기는 “커뮤니티 등급을 올리고 관심을 받기 위해서”로 동일했다. 커뮤니티의 회원등급 시스템이 범죄를 부추긴 예다. 지금도 일베 사이트에는 “여자친구 성기에 공업용 윤활유를 뿌렸다” “여자친구를 몰래 찍었다”는 식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자극적인 게시글들이 버젓이 범람하고 있다. ‘일베 대항마’로 등장한 남성혐오 사이트 워마드는 일베를 흉내내면서 그 폐해도 답습하는 모양새다. 워마드 게시판에는 여성에 대한 불법촬영 범죄 ‘미러링(mirorring·모방)’의 하나로 “XX역 몰카 설치한 거 푼다” “몰카 구매 후기 들고 왔다” 같은 자극적인 제목이 달린 ‘낚시글(실제 내용은 없는 글)’이 도배된 상황이다. 8월에는 “청와대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허위 글이 올라와 경찰이 공무집행방해로 내사에 착수하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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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념 결합, 여론조작 이용되기도

“혐오 표현 규제·회원 자정능력 절실”



각 커뮤니티가 특정 정치이념과 결합하면서 여론 조작에 이용된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정권이 여론을 관리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부터 2012년 대선까지 국가정보원과 국방부를 통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법원은 당시 국정원이 ‘오늘의유머’ 찬반 클릭 1,214건 등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 활동을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고 판단해 지난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커뮤니티는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한 가짜뉴스의 유통 창구로도 이용된다. 6월에는 예멘 난민이 제주도로 대거 입국하면서 난민과 관련한 가짜뉴스가 여성시대·네이트판을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에서 활개를 쳤다. “종각역에서 이슬람교도가 집단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다” “스웨덴에서 난민을 받아들인 후 성폭행 범죄가 1,472% 증가했다” “정부가 제주 예멘 난민에게 매월 138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돼 난민 문제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강화시켰으나 모두 반이민자 성향의 극우 사이트를 인용했거나 출처를 찾아볼 수 없는 허위정보로 결론 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드세다. 2월에는 “일베를 폐쇄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참가자 20만명을 넘겼다. 청와대는 답변을 통해 “최근 5년간 차별이나 비하 내용으로 문제가 된 게시물에 대한 제재 건수가 가장 많았던 곳이 일베 사이트”라며 “방통위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문제가 심각한 사이트는 청소년 접근이 제한되는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일베나 워마드 같은 사이트를 검토해 폐쇄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2016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부인하고 외국인 혐오를 부추겼다”면서 ‘네오나치(신 나치 추종자)’ 커뮤니티를 폐쇄하고 게시글을 올린 사람들도 체포했다. 2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직접 “가짜뉴스 생산·유포자를 강력히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커뮤니티 문화를 개선하시 위해 규제와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현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커뮤니티를 통해 가짜뉴스가 확산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객관적인 사실이나 현실이 아닌 자신의 믿음 체계를 강화하는 정보만을 관성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며 “혐오를 선동하는 극단적인 경우 규제가 불가피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독해력) 교육을 통해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자정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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