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이 변혁을 가속하고 있다. 인력동원 중심의 군대에서 기계화·기동화를 넘어 첨단지능형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육군이 추진하는 인공지능(AI) 기반 초연결 지상전투 체계가 자리를 잡으면 군의 전력 증강은 물론 걸음마 단계인 관련산업의 성장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군의 혁신과 산업계가 상호 보완 발전하는 성장 모델은 우리나라 산업사 측면에서도 사상 초유다. 다만 보병부대 전체가 한꺼번에 기계화하거나 AI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고 단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창군 이래 최대 변화가 이제 막 가시권에 들어왔다.
◇타이거 4.0 이란=육군이 구상하는 ‘타이거 4.0’의 정식 명칭은 ‘AI에 기반을 둔 초연결 지상전투 체계(The Korea Army TIGER System 4.0)’. 여기서 ‘타이거(TIGER)’는 우리 민족의 수호자로 호랑이며 동시에 ‘4차 산업혁명 기술로 뒷받침되는 육군의 혁신(Transformation Innovation of Ground forces Enhanced by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technology)’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동화·네트워크화·지능화가 3대 핵심이다. 발바닥에 물집이 이중 삼중으로 잡히도록 무작정 행군하던 훈련의 양상도 크게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고지전’은 잊어라. 빠른 기동력이 생명=‘통상 새벽4시~4시30분에 비상이 발동되면 각 부대는 미리 설정된 진지를 점령하는 게 첫 순서다. 4~5시간을 걸어 진지에 도착하면 비상은 해제되고 다시 행군으로 부대에 복귀하면 하루 해가 거의 다 간다.’ 웬만한 보병부대는 이 같은 비상을 자주 겪기 마련이다. 죽어라 걷는 수밖에 없다. 훈련도 비슷하다. 공중강습 병력은 헬기를 타고 불과 10분이면 될 산악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보병은 10시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전 세계를 통틀어 보병의 두 다리에만 의존하는 군대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산악병 같은 특수병을 빼고는 모두 기동군으로 바뀌었다. 미국 보병사단은 말이 보병사단이지 여느 나라의 기갑사단보다 기계화됐다. 오직 우리나라만 고지전에서나 등장할 보병 중심으로 전력을 구성하고 교리를 개발해왔다. 육군은 이 같은 전투 교리에서 벗어나 보병에게 장갑차와 신형 바퀴식 장갑차, 소형전술차량을 가능한 한 빨리 보급해 미래전 체계 완성을 앞당길 생각이다. 기동차량은 크게 세 종류. 신형 8×8차륜형 장갑차와 소형전술차량은 신규 생산분을 투입하고 K- 200 장갑차는 기계화보병사단 개편으로 나올 물량이 사용될 예정이다. 3종의 기동차량은 중부와 동부·서부 등 각 전선의 특성에 맞춰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1개 분대씩 탑승하는 각 기동차량에는 12.7㎜ 기관총이나 40㎜ 유탄포가 원격무장체계(RCWA)로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1개 분대의 전투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강력해지는 셈이다.
◇세계는 지금 장륜형 장갑차 시대=우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장륜형 장갑차, 즉 무한궤도가 아니라 바퀴가 달린 장갑차 시대가 열리고 있다. 품질이 그만큼 좋아졌다. 한국군은 한국전쟁 초기 미군이 공여한 M8 그레이하운드가 북한군의 전차를 맞아 대응하지 못했으며 이탈리아 피아트-6614를 KM900이라는 이름으로 들여온 면허생산품의 저품질로 인한 불신의 벽을 깨지 못해 오랫동안 장륜식 장갑차를 잊고 지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은 기갑전력 대체용으로까지 장륜형을 염두에 두고 있다. 미국제 M-113 장갑차 6,100대 이상을 운용하는 이스라엘은 후속 기종으로 무게 35톤짜리 에인절 장갑차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스트라이커 여단 전투단을 운용하고 있다.
◇탐지에서 지휘 결심까지 로봇·인공지능이 거들어=정보획득 방법부터 달라진다. 육안이나 쌍안경 수준의 정찰에서 드론과 무인기·고고도정찰기 등 각종 정찰자산과 일선부대의 무인정찰 차량, 방탄 장갑차 등이 획득한 정찰정보는 실시간으로 지휘소로 모인다. 예전에는 각종 위협요소의 경중을 파악하고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하기까지 수십 분에서 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AI가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최적으로 대응방안을 지휘관에게 조언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야 3분. 거의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AI는 적군의 규모와 위험가중치, 아군의 현재 상황을 종합 판단해 최적의 대응수단을 지휘관에게 보고한다. 무선통신망으로 연결된 장병들과도 연결이 가능하다. 한국에 침입한 외적이 있다면 일순간에 부대 전체가 괴멸될 가능성도 있다.
◇장비 및 예산 확보에 달렸다=미 육군의 7개 스트라이커 여단 전투단이 보유한 스트라이커 장갑차는 모두 2,988대. 한국군은 전방 12개 사단에 대해 미 육군의 3분의1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서 배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전방 12개 사단에 소속된 보병대대를 미군 기준으로 채우려면 7,500대가 필요하다. 생산 물량이 이 정도에 이르지는 못해도 현재 계획보다 최소한 2~3배는 늘어나야 전방 병력이라도 기동화가 가능하다. 기동화가 전혀 진전되지 않은 후방의 동원사단이나 향토사단의 경우도 맡은 지역이 넓어 배치가 시급한 실정이다. 알보병이 사라진다고 말하기는 일러도 한참 일렀다. 육군은 단계적으로 실행할 생각이나 결국 예산 확보에 진척이 달렸다는 얘기다.
◇ 변혁의 두 가지 추진동력, 인본주의와 민족정서=타이거 시스템 4.0은 최신 장비와 무장, 기동수단, 네트워크 연결로 주목받지만 추진동력은 따로 있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인본주의. ‘사람이 가장 비싸고 소중한 자원’이라는 사실에 눈을 떴다. 물론 이전에도 ‘사람이 가장 싼 군대를 벗어나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실행은 번번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이번에는 다르다. 무엇보다 병력자원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한정된 인적자원으로 예전보다 높아진 목표를 이뤄내려면 사람에 대한 투자 외에는 방법이 없다.
현실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사람 값이 가장 비싸다. 미군의 경우 20대 병사가 부상할 경우 해마다 13만 6,000달러의 치료비를 50년 동안 국가가 맡아야 한다. 평생 치료비만 680만달러. 여기에 부상한 병사의 성장 과정에 투입된 교육비와 부상을 당하지 않고 사회에 진출해 이뤘을 성과까지 감안하면 사회적 기회비용은 훨씬 커질 수 있다. 장병 개인의 실의와 주변 장병들의 동요, 가족의 괴로움은 측량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장병의 생존성 강화 장비, 인력을 대신할 로봇이나 드론이 비싼 것 같지만 인명손실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싸다는 얘기다. 한국군의 경우 미군에 비해 부상자·전사자 보상이 낮지만 점차 오르고 있어 재정에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의 전투원 사망·부상이 미국에서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딸이든 아들이든 한 자녀만 있는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오는 2022년이면 한 자녀 가정이 전체의 67%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장병 1인이 지켜야 할 국민의 수도 올해 106명에서 2022년이면 134명으로 늘어난다. 장병이 한 사람이 다치거나 죽으면 국민 134명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와 같다.
◇외적에는 호랑이처럼 대적한다는 의지 깔려=육군의 ‘타이거 시스템 4.0’을 설명하는 자료에는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象圖)’가 비중 있게 소개된다. 무궁화가 피어 있는 땅을 지키는 용맹스러운 호랑이를 우리나라 지도 형상에 맞춘 그림이다. 구한말 작가 미상의 이 작품은 일본이 한국의 식민지화를 추진하며 우리 지도 형상을 토끼에 비유하자 자연스럽게 민간에 퍼졌다. 특히 육당 최남선이 1908년 최초의 잡지 ‘소년’을 창간하며 표지에 실어 민족의식을 고취한 그림을 육군은 110년 만에 미래를 위한 상징으로 되살려냈다. 육군의 한 장성은 “요즘 같은 변화는 처음 본다”며 “사관학교 입교 이래 품었던 ‘호랑이의 꿈’이 현실화하는 것 같아 벅차다”고 말했다. 육군의 당면목표인 ‘타이거 4.0’에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안보환경을 구축한다는 의미가 담긴 셈이다. 맹호의 기상이 그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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