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토요워치] 혜화로 송도로 오프라인 보폭 넓히는 온라인 커뮤니티

■'이념의 장' 된 커뮤니티




“2018년 9월8일 토요일 웃긴대학 유저 냥라임이 곰탕집(보배드림) 유죄추정사건을 비판하고자 시위를 제안해 네이버 카페를 시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오는 27일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집회를 예고한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의 설립목표는 ‘시위’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지향점이 단순한 인터넷 공간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익명성의 베일 뒤에서 정제되지 않은 주장을 일삼던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제 성·사회·정치 등 각종 분야에서 논리를 다듬으며 오프라인으로 지평을 넓히고 있다. 현실 세계로 나온 누리꾼들의 움직임에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족 지키자” 보배드림 당당위 모임

‘곰탕집 성추행 사건’ 27일 집회 예고

불편한 용기 ‘여성 편파 판결’ 시위 나서

송도 불법주차 등 사회고발 창구 역할도




최근 오프라인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단연 성(性) 이슈에 집중하는 곳들이다. 지난 5월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을 계기로 탄생한 여성 단체 ‘불편한 용기’는 6일 혜화역에서 남성을 우대하는 편파 판결에 항의하는 집회를 연다. 불편한 용기는 이번 집회에서 죄질에 비해 가벼운 형량을 받은 남성의 사례를 들어 사법부를 비판할 예정이다. 27일에는 혜화역 근처에서 ‘당당위’가 사법부의 편파판결을 비판하는 시위를 연다. 당당위는 오히려 사법부가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서 남성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지난해 11월 대전의 한 음식점에서 남성이 여성의 신체 일부를 만졌다는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된 사건이다. 당당위 측은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의 유죄를 입증할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겼다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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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뮤니티가 오프라인으로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후 5개월이 지난 그해 9월 유가족들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하자 당시 일간베스트(일베) 게시판에는 맞불 ‘폭식투쟁’이 예고됐고 이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일부 일베 회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었으며 ‘단식’에 맞선 ‘폭식’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여론의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가 주도하는 오프라인 시위는 그동안 ‘그들만’의 주장에서 벗어나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논리를 갖추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당당위는 자신들의 활동은 여성혐오와 다르며 성평등이라는 가치가 ‘남성 억압’이 아닌 ‘특정 성의 인권 향상’에 있어야 한다며 재판 역시 여성의 주장에 치우친 판결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 대 여성’이라는 단순한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인 셈이다. 김재준 당당위 운영자는 “우리는 남녀 대결을 지향하지 않고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한다”며 “사법 정의에 있어 남자와 여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상대의 성에 대해 혐오의 감정을 갖지는 않는다”며 기존 온라인 커뮤니티와의 활동과 선을 그었다. 김 운영자는 “카페 내 여성회원이 20%”라며 “(다른 성 관련 집회와는 다르게) 우리 집회에서는 여성도 당연히 참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당위는 기존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익명성을 기반으로 활동해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는 데 반해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기도 하다. 8월 불편한 용기가 광화문광장에서 연 4차 시위도 과격하게 특정인을 공격하기보다 불법촬영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검경과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구호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절제된 방식으로 진행됐다. 남성 혐오적 발언을 일삼는 극단주의 사이트 ‘워마드’와 같은 집단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동은 성 문제에만 멈추지 않는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승용차로 고의로 막은 사건이 사회 이슈화된 것은 차량 커뮤니티 ‘보배드림’ 덕분이었다. 관리사무소가 차량에 주차위반 스티커를 붙이자 이에 분노한 차주가 진입로를 막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배드림 회원들은 게시판에서 아파트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여론을 주도했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사회고발 창구로서의 역할로 진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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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영상 공개’ 현실 정치에도 영향

신상털기·잘못된 정보 재생산은 문제로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는 현실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박영선 의원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최순실을 알지 못했다”며 모르쇠로 일관하자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김 전 실장이 당시 박근혜 캠프의 참모로 최순실 관련 의혹을 듣고 있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조상 격인 디시인사이드의 이용자들이 박 의원에게 직접 제보한 것이었다. 박 의원은 이후 디시인사이드에 “여러분의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고 답례했다. 이전까지 인터넷 커뮤니티가 정치인이 ‘인증글’을 올리고 시민과의 접촉을 늘리는 통로로 기능했다면 이제는 정치인과 상부상조하기 시작한 셈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의사소통과 공동체 형성 효과를 연구하는 논문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의제가 여전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다 잘못된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기도 해 결국 제대로 된 진상을 파악하고 지나친 선동에는 거리를 두는 시민의식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형 마트에서 시판되는 제과 상품을 수제로 둔갑해 팔았다는 ‘미미쿠키’ 사건도 한 누리꾼의 의혹이 ‘MLB파크’ ‘오늘의 유머’ 등 유명 커뮤니티로 퍼지며 경찰 수사를 견인했지만 갑작스레 “유기농에 열광하는 엄마들이 문제”라는 ‘맘충’ 논란으로 번지거나 업주와 자녀의 신상을 공개하는 ‘신상털기’로 비화해 우려를 낳았다.


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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