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가 상대에게 뜻대로 전달되기란 무척 어렵다. 내 의지를 나의 행동으로 옮기는 것조차 ‘맘 먹은 대로’ 잘 안되는 일일진대, 남에게 전하는 글에는 행간의 의미가 있으며 말에는 어감의 차이가 있으니 명확한 내용이라 해도 미묘한 어긋남이 생기곤 한다. 예술이 감상자에게 온전하게 제 목소리를 전달하기란 더욱 어렵다. 더군다나 그림이, 그것도 추상미술이라면.
20년 가까이 추상 회화에 매달려온 작가 홍수연(51)의 개인전 ‘내재된 추상(Abstract: Intrinsic)’이 14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스페이스소에서 열린다. 최근작 13점과 드로잉 9점이 선보였다.
작품의 인상은 유리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만큼이나 영롱하면서도 아슬아슬하다. 또르르 흘러내리는 게 섭리인 물방울이 딱 붙어 있으려니 중력과 장력이 팽팽하기 마련이다. 스며드는 편안함과 파고드는 긴장감이 공존한다. 물론 추상화라 이렇게 보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 견해다. 이선영 미술평론가처럼 물 위에 떨어진 꽃잎이나 눈동자 위에 밀착된 렌즈처럼 볼 수도 있고, “시간적 과정과 그 과정에 내재한 변화를 직관적인 방식으로 드러낸” 것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작업과정을 보자. 우선 캔버스에 바탕색을 칠한다. 아주 얇게, 동시에 여러 겹으로 꼼꼼하게 면을 채운다. 어느 새 화판은 얼음판처럼 매끈해진다. 숙련된 경험과 숱한 실험에서 뽑아낸 작가만의 레시피가 화면의 투명도를 결정한다. 그저 ‘색깔’ 뿐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 칠하는 과정에 작가의 미묘한 감정변화까지 담긴다. 그런 다음 양팔로 캔버스를 붙들고 움직여가며 물감의 방향을 만들어 낸다. 서로 다른 색을 가진 물감은 밀도와 각도에 따라, 의도와 우연이 공존하며 제 길을 찾아간다.
홍익대와 프랫인스티튜트를 졸업한 홍 작가는 ‘제약’ 속에서 새로운 표현을 모색했다. 문학으로 빗대자면 단어를 제한한 채, 시와 소설을 쓰게 한 셈이다. 붓을 쓰는 대신 화판 기울이기로 형식의 제약 속에서 다양한 어법을 찾았고, 2010년 무렵부터는 색을 한 두 가지로 한정해 작업했다. 작가는 “색을 자제하면 공간이나 형태 관계에 대한 예민함이 극도로 커져 또 다른 것이 생겨날 수 있을거란 생각에 ‘한 손을 묶고 작업하듯’ 회색시리즈를 시작했다”면서 “최근 작에서는 의도의 비중을 더 낮추고 견고해진 형(形)들을 스스로 깨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간 견고했던 형태들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관람객이 상상할 수 있는 폭도 커졌다. 그림 속에서 돌아앉은 사람, 서로 껴안은 연인도 찾아낼 수 있다. “일반인들은 추상 안에서 형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나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 중요하죠. 결국 느낌이에요. 어떤 느낌이 나에게 왔고 나를 자극한 것은 무엇인지를 찾는 게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