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국가에 현존하는 최대 위험은 저출산이다. 국가 존립에 관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35만7,000여명으로 한 해 전보다 11.9%(4만8,000여명) 줄었다. 한 해 출생아 수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1970년 이후 47년 만에 처음으로 40만명선이 무너졌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합계출산율’도 1.05명으로 줄어 2005년 1.08명 이후 12년 만에 1.1명 이하로 떨어졌다.
저출산을 극복하려면 청년들의 일자리, 주거, 보육과 교육, 가정과 일의 양립 등 결혼과 출산의 전제 조건 네 가지가 해결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세계적 저출산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다.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에 의하면 취업자 증가 수가 전년 동월에 비해 3,000명 증가하는 데 그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다. 지난해 월평균 31만명 수준이었던 취업자 증가 수가 2월부터 5개월 연속 10만명 수준으로 급감한 데 이어 7월에는 5,000명, 8월에는 3,000명대로 내려앉았다. 우리 사회의 허리인 40대 취업자는 1년 새 15만8,000명이나 감소해 외환위기로 시달리던 1998년 8월 이후 20년 만에 최악이다. 올 2·4분기 체감 청년실업률도 23.2%로 4명 중 1명 정도가 실업자일 정도로 고공 행진하고 있다.
주거 문제를 보면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7억5,000만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30대 직장인의 평균 연봉 3,900만원을 19년 동안 한 푼 안 쓰고 모아야 겨우 서울의 집을 한 채 살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서울의 평균 전셋값도 4억3,000만원에 달하고 오피스텔 월세 평균액이 20대 청년 월급의 절반 수준에 와 있다.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한 청년 세대는 주거 빈곤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고 이를 탈피할 희망도 없다.
보육 측면에서 워킹맘은 출산 휴가부터 직장 눈치를 봐야 하고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어린이집이 태부족하다. 손주들의 육아를 떠맡은 친정 부모들은 관절염·허리디스크 등 심각한 육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온 가족이 보육과 전쟁 중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아이 1명을 대학까지 보내는 데 들어가는 교육비가 평균 3억원을 넘어섰다. 출산 여성의 직장 복귀가 어려운 점도 여전히 출산을 제약하는 주요 요인으로 남아 있다.
2006년부터 올해까지 13년간 2,000여 가지의 백화점식 저출산 대책에 153조원의 나랏돈을 쏟아부었지만 결혼과 출산의 전제 조건 네 가지는 개선된 것이 없고 출산율은 계속 하향 곡선을 그렸다. 세금만 낭비했다. 이를 감안할 때 2007년 대선 당시 허모씨가 내놓은 ‘결혼 축하금 1억원, 출산 장려금 3,000만원’이라는 당시 허황했던 공약이 이제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지 않는다.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저출산 대책이 헛바퀴 도는 가운데 한국의 젊은이들 상당수가 ‘딩크족(DINK)’으로 돌아섰다. 딩크족은 ‘부부 둘이 취업해 각각 월급을 받으면서(Double Income), 아이를 가지지 않고(No Kid), 평생 둘이서 잘 먹고 잘살다가 저세상으로 가자’는 생활신조를 가진 젊은이들을 말한다.
결혼한 딩크족이 아이를 낳지 않는데다 연예·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 세대’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최악의 출산 환경에서 이민자 수용이나 ‘인구청’ 신설 등 다양한 인구 대책 검토도 물론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결혼과 출산의 전제 조건 네 가지를 확실히 해결하는 데 국가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청년들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저출산 대책을 남발하고 여기에 나랏돈을 쏟아붓는 구태의연한 재정정책을 되풀이한다면 저출산 문제 해결은 백년하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