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고흐’를 치면 블로그만 33만 개 이상이 검색된다. 언젠가부터 ‘미술사’는 단지 학문에 머무르지 않고 일반인들의 교양·인문 영역으로 성큼 들어왔다. SNS가 소통의 중심에 놓인 ‘이미지’의 시대이고 때로는 미술작품이 과시와 허세의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그런 관심사를 반영하듯 미술사 관련 서적, 강의가 쏟아지는 가운데 옥석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온 책이다. 후배 미술사학자 홍지석이 한국 근대미술사학의 대가인 최열과 마주앉아 ‘미술사란 무엇인가’로 시작해 ‘미술사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에 이르기까지 3년에 걸쳐 나눈 대화를 책으로 엮었다. ‘미술사란 무엇이며, 어떻게 읽고 보아야 하는가에 관한 후배의 질문 선배의 생각’이라는 부제가 따랐다.
미술사가 그림 제목과 화가 이름의 나열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술작품에서 시작해 미술가와 그의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 학문이요, 미술을 통해 들여다본 사회상이자 역사다. 미술사의 본질을 파고드는 두 저자의 질문과 대답이 치열하다. “좋은 작품이란 새로운 시대를 연 작품이며 새로운 취향이나 새로운 감각, 새로운 이상이 펼쳐질 수 있도록 문을 연 작품들”(홍지석)이라는 말이나 “인품과 화품이 함께 간다는 뜻에서 ‘인품화품일률론(人品畵品一律論)’의 관점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가치와 미술사의 가치 평가나 해석도 함께 가는 측면이 있다”(최열)는 구절은 금과옥조(金科玉條)다. ‘미술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아래 이념과 현실, 기록과 증언에 대한 역할론을 이야기하고 ‘미술사는 사실인가 해석인가’를 놓고 역사와 비평의 차이에 대한 불꽃 튀는 토론이 전개된다. 얼핏 이 책을 미술사 전문가들을 위한 책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꼭 그렇지는 않다. 미술사를 공부하려는 이들이 먼저 가봐야 하는 각지의 미술관 박물관, 꼭 봐야 할 책 등을 세세하게 짚어주고 “인터넷 자료와 정보 중에는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많으니 늘 그 원본을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홍지석의 질문으로 책장을 열어 독파에 성공한다면 책 말미에서 최열과 마주하게 된다. “내가 미술사를 공부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한 그가 되묻는다. “당신은 왜 미술사 공부를 하려 합니까.”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