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팜이 실제 농가의 생산성을 높여야 합니다. 표준화된 경작 데이터도 없이 농가들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으로 장비부터 설치해 설비업체들만 이득을 보는 현재의 스마트팜 병폐는 없어져야 합니다.”
스마트 경작 시스템 스타트업인 스마프의 채한별(39·사진) 대표는 최근 미래농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스마트팜이 정작 우리 농가 재배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지(맨땅)의 생산성을 높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최근 서울 역삼동 아산나눔재단 창업지원센터 ‘마루180’에서 열린 ‘창업토크 파이널’ 강연 후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농가들에 지능형 관수관비(물·비료 제공) 솔루션을 임대해 농가의 인프라 비용 부담을 줄일 것”이라며 “경작지의 수율을 높여 농가수익을 올리는 데 도움을 주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스마프의 관수관비 솔루션은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을 활용해 온도·습도·강수량 등 작물 재배에 필요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자체 개발한 밸브·펌프·센서 등으로 필요한 물과 비료를 자동 산출해 공급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비슷한 솔루션은 있었지만 주로 330㎡(100평) 안팎의 소형 시설재배 위주로 적용됐다. 채 대표는 스마트팜이 절실한 노지에 주목했다. 그는 강연에서 “노지 재배는 보통 1㏊(3,025평)가 넘어 사람이 경작하고 급수관·통신선 등 시설을 까는 데 어려움이 많아 노지환경에 맞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채 사장은 스마트폰으로 각각 제어·통신이 가능한 펌프·밸브를 개발했고 장비가격도 기존 설비의 5분의1 수준으로 낮췄다. 타깃 작물은 가공용 감자다. 재배주기가 짧고 감자 칩으로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스마프는 지난 3~6월 SK텔레콤·오리온과 협력해 전북 정읍과 경북 구미의 감자 공급농가에 솔루션을 적용해 수율 향상 효과를 입증했다. 그는 “솔루션이 없는 농가와 비교해 생산량과 전분밀도가 높았고 상품이 비교적 균일했다”며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노지를 제대로 활용하면 농가·가공업체·솔루션업체 모두 윈윈하는 모델이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프는 내년 중국 신장 지역에 오리온이 보유한 대형 농장에 솔루션을 적용할 계획이다. 채 대표는 “대규모 노지에서 빅데이터를 모을 소중한 기회”라며 “중국에서 얻은 데이터를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직장 생활을 접고 충북 옥천으로 귀농하면서 시설재배에 관심을 가졌다. 표고버섯 재배 중 수동밸브의 불편함을 절감한 그는 직접 밸브 개발에 나섰고 3년 전 아예 스마트팜 스타트업을 세웠다.
그는 “원래 농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학도였지만 농촌 생활을 겪어보고 창업을 선택했다”며 “제대로 쓰지 못하는 땅을 일궈 얻는 결실을 모두 나눠 갖도록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채 대표는 감자에 이어 주정·전분으로 쓰이는 카사바, 팜유 원료인 기름야자 등의 작물에도 도전하고 향후 솔루션 적용 지역을 동남아·아프리카 등으로 넓힌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농업을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농업종사자들이 의외로 많다”며 “전략이 없는 농가들을 돕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전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