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DJ 땐 '공공부문 DB화' 명분 있었는데... 정부도 "단기 일자리, 돈만 들고 효과없다"

제설작업·풀뽑기·짐들어주기 등

자기계발·경력관리와 거리 멀어

공기업 채용계획 숫자 늘리기 급급

"정규직 고용때 가점도 없어 씁쓸"







외환위기가 닥친 김대중(DJ) 정부 때도 공공기관·공기업의 단기 일자리 확대 사업이 대대적으로 추진됐다. 김대중 정부의 공공근로사업에서는 행정 정보 등을 디지털화하는 ‘공공부문 정보화 사업’, 전문대 이상 미취업자를 전산보조원으로 임용해 학교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초중등학교 전산 보조원 사업’ 등이 핵심적으로 추진됐다. 물론 당시에도 고용의 질이 악화된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공공부문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화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사료가 디지털로 재탄생해 국내 콘텐츠 산업 생태계가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는 등 지금도 활용도가 높다. 정책 효과로 실업률은 지난 1998년 당시 6.8%에서 2002년 3.6%까지 내려가면서 ‘단기 일자리’ 급조 논란은 금세 잠잠해졌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단기 일자리 확대 계획은 그때와 질적인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21일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실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들이 최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단기 일자리 계획의 상당수는 도로 청소, 고객 안내, 홍보물 배포 등이다. 해당 기관의 핵심 직무와 관련 없는 단순 직무가 많다는 얘기다. 미래를 위해 의미가 있는 일자리도 아닌데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청년 취업자의 경력 관리와 자기계발 차원에서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과도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내부에서도 “돈만 들고 효과도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김대중 정부 때는 ‘공공부문 DB화’라는 큰 미션이 있었고 그 덕분에 지금 우리가 편하게 정보 검색을 할 수 있게 됐다”면서 “최근 단기 일자리 확대 방안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들의 채용 계획을 살펴보면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한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달부터 올해 말까지 총 1,941명의 단기 채용 계획을 보고한 한국도로공사의 경우 동절기 고속도로 제설작업에 970명, 고속도로 특별 환경 정비 사업에 971명을 투입한다. 4개월짜리 이 사업은 제설장비 운영과 정비, 염화칼슘 수용액 제조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데 이는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도 아니다. 정부의 채용 실적 압박에 시기를 앞당긴 고속도로 특별 환경 정비 사업의 경우는 고속도로 주변의 법면 청소, 주변 풀 뽑기, 배수관 정비, 오물 수거가 주요 업무다. 채용 기간도 1개월인데다 이 역시 청년 대상이 아닌 장년층의 ‘소일거리’용이다. 도로공사의 정규직 채용 때도 가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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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3개월짜리 일자리로 입주·하자 서비스 조사원 2,100명을 쓰겠다고 했지만 이들의 평균 근무 기간은 2.5일에 불과했다. 3개월 동안 한 사람당 평균 2.5일씩 근무하게 하는 방식으로 창출 일자리를 2,100개까지 불린 것이다. 2,100명이 받는 총급여는 인당 17만5,000원(일당 7만원)에 불과하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도 짐 들어주기 업무에 100명을 뽑고 3호선 대곡역 환승객들에게 비슷한 업무를 하는 데도 57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역시 터미널 이용 안내 등 여객서비스에 432명을 투입하고 동절기 운항시설 관리 지원 등 운항서비스에 146명을 배치한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축제 진행 업무, 면세점 마케팅 행사에서 전단지 배포, 북페어 행사에 대비해 530명 이상을 채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급조된 일자리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3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취업 준비생들도 씁쓸한 반응을 보인다.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서울의 한 사립대 4학년인 이승훈(가명·25)씨는 “정규직 채용에 가점도 없고 이력서에 넣기도 민망한 경력만 될 것”이라며 “이런 것을 보고 있으면 씁쓸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송주희기자 pressk@sedaily.com

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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