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에도 자주 소개되며 육회와 빈대떡으로 큰 인기를 모으는 광장시장은 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시장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상인들의 상권 장악에 맞서 조선상인들이 뭉쳐 시장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광장시장의 효시이다. 포목 거래가 특히 활발했으며 지난 1970년대까지도 혼수·제사 용품하면 광장시장을 떠올릴 정도로 서울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지난주 말 지인들과 광장시장에서 회포를 풀었다. 이곳에서 아내와 결혼 준비를 하던 아련한 기억과 함께 쇼핑몰, 나아가 오프라인 유통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잠시 단상에 빠지게 됐다.
광장시장이 생겼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는 이미 근대적 개념의 쇼핑몰이 태동했다. 1930년대에는 계획된 현대적 시설의 쇼핑몰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 와서는 백화점과 영화관·레스토랑 등 위락 시설을 한곳에 모은 본격적인 엔터테인먼트형 쇼핑몰이 생겨났다.
복합쇼핑몰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시카고의 관광명소 ‘워터타워 플레이스’는 40년도 더 전인 1975년도에 건립됐다. 우리는 재래식 5일장에서 주로 물건을 사던 시대에 지금 가도 입이 떡 벌어지는 쇼핑몰을 만들어냈으니 미국은 정말 대단한 소비의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1980~1990년대에 본격적인 교외형 메가몰이 등장했고 쇼핑몰의 전성시대를 열어젖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국은 ‘쇼핑몰 종주국’답게 규모도 규모지만 쇼핑몰의 경제·사회적 위치도 대단하다. 최전성기를 달렸던 1990~2000년대 초에는 쇼핑몰의 고용인구가 1,000만명에 이르렀고 이는 비농업 인구의 8% 수준에 달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 쇼핑몰의 역사는 훨씬 짧다. 우리나라 쇼핑몰의 효시는 88올림픽에 맞춰 1차 완공된 무역센터로 보기도 하지만 이곳에 코엑스몰이 정식 개장한 것은 아셈 정상회의가 열린 2000년이다. 이후부터 본격적인 복합쇼핑몰 시대가 열려 센트럴시티와 아이파크몰·타임스퀘어·롯데월드타워에 이어 최근 스타필드 하남·고양이 잇따라 오픈했다.
하지만 온라인 시대의 개막과 함께 쇼핑몰의 위기도 다가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모든 것을 팔겠다”는 아마존의 공세 속에 소매 유통체인들의 ‘아마존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 아메리칸 라이프 스타일의 상징과도 같았던 대형 쇼핑몰이 미국에서 5년 내 25%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질서의 재편에 가까운 혁신적 변화의 순간에는 기존의 틀과 사고를 송두리째 바꾸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쇼핑몰들은 고객에게 ‘상품’이 아니라 ‘경험’을 팔고 개발적 측면에서는 ‘임대’가 아닌 ‘공간’을 연출하며 매출은 ‘집객’이 아니라 ‘체류’에서부터 온다는 새로운 명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물건이 아니라 문화와 여가·체험을 판다는 태생과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쇼핑테마파크’ ‘어뮤즈먼트 몰’과 같이 쇼핑몰의 어원을 뒤집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들은 이를 위한 출발점이다.
물물교환과 상품판매의 시대를 거쳐 이제 ‘경험을 판다’는 것은 실로 4차 산업혁명에 준하는 유통 실험이다. 오프라인 유통업의 위기와 도전 앞에 고객과 시대의 엄준한 평가가 함께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