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프라코어·GS건설·두산중공업·현대위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카카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주요 기업들로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공매도 잔액 상위 기업들이자 국민연금이 4% 이상 주식을 대여해준 기업들이다. 공교롭게도 해당 기업의 주가는 최근 1년 새 급락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주가는 31.6%, GS건설은 54.9%, 두산중공업은 38.8%, 현대위아는 47.1% 나 빠졌다. 개인 투자자는 물론이고 해당 기업에 투자한 국민연금도 4곳의 기업에서 12~39%까지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은 “(공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이) 개연성이 있다고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다”며 “개인이 노후를 위해 낸 연기금이 주식을 대여하고 대여된 주식이 공매도에 악용돼 결국 개인과 국민연금도 손실을 보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3일 국민연금이 전격적으로 국내 주식대여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은 국민의 노후를 담보로 공적 기능에 치중해야 할 연기금이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향후 공매도 폐지 등 관련 제도 전면 재수술에 힘이 실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주식대여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민연금공단이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 주식대여로만 689억원의 수수료를 벌었다.
국민연금이 빌려준 주식은 이들 회사에 대한 공매도 투자에 주로 활용된 것으로 분석된다. 공매도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주식을 파는 거래로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하락하면 같은 종목을 싼값에 다시 매수해 차익을 챙기는 매매 방식이다. 주가가 하락할수록 이익을 본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들에게 공매도는 절대 악으로 평가된다. 공매도가 늘면 주가가 하락해 개인 투자자의 손실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외국인이나 기관이 주로 참여하고 개인 비중은 1%밖에 안 된다. 개인은 앉아서 당하기만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국민연금은 연평균 140억원대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공매도 배후 세력’이라는 국민의 비판을 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국민연금의 공적 기능 강화라는 의미도 담았다. 국민연금과 달리 사학연금·군인연금·공무원연금 등 연기금은 주식대여를 아예 하지 않는다. 물론 국민연금의 주식대여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위법한 투자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대여한 주식도 공매도 세력에 의해 무차입 공매도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무제한으로 주식대여가 이뤄지면 대차 주식이 재대차로까지 확산되며 주식거래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재생산될 위험성도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공매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힘들 것으로 봤다. 금융투자협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대여 규모는 월말 평균잔액 기준 4,480억원으로 전체 대여시장(66조4,040억원) 대비 0.68%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의 주식 대여의 비중이 적은 만큼 외국 기관들이 해당 물량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매도 거래 주체는 대부분 외국인”이라며 “외국인들은 다른 외국 기관을 통해 주식을 대여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중호 KB증권 연구원은 “롱·쇼트(매수·매도)펀드 및 헤지펀드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관점에서 시장의 활성화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차후 시장에 외국인 투자가만이 대차 매도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등이 발생하고 ‘기회의 공평’에는 오히려 저해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