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초부터 시작된 미국 증시의 최장 강세장 기록의 버팀목이던 기업 실적이 흔들린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3·4분기 어닝시즌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유발한 관세장벽과 달러화 강세가 미 제조업체들의 수익성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투자자들은 우려에 휩싸였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에 따르면 미 제조업체들의 3·4분기 이익은 관세 부과에 따른 비용 증가와 달러 강세, 중국 시장 위축의 여파로 상반기보다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정보 업체 레피니티브는 뉴욕 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3·4분기 이익 규모가 1·4분기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전년동기 대비 기업이익 증가율도 1·4분기 26.6%에서 3·4분기 22.1%로 둔화됐다.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의 실적 둔화가 앞으로 본격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경기의 나침반으로 불리는 중장비 제조업체 캐터필러는 이날 전년 대비 크게 증가한 3·4분기 매출액(135억달러)과 순익(17억2,800만달러)을 발표했지만 실적 전망치가 악화하면서 주가가 7.6%나 급락했다. 캐터필러는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로 올해에만도 1억달러의 원자재 비용이 추가됐다며 내년에는 부담이 2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캐터필러는 특히 무역전쟁으로 중국 시장의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생활 및 사무용품 생산업체 3M은 생산비용 증가와 중국의 경기 부진을 이유로 3·4분기 부진한 매출실적을 발표하고 올해 이익 전망치도 하향 조정했다. 3M은 관세로 발생한 비용이 올해 4,600만달러에서 내년에는 1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의 유명 오토바이 제조업체 할리데이비슨도 관세 비용 증가에 달러화 강세의 여파가 겹쳐 수출 이익이 급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 실적조사 기관인 CFRA의 샘 스토벌 수석 애널리스트는 “무역분쟁이 실제 기업이익을 압박하고 있다”며 “기업이익 증가세가 정점을 지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에도 미 증시 상승을 이끌던 기업 실적에 금이 가면서 향후 증시 변동성이 커져 수차례 조정 장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WSJ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관세가 얼마 되지 않는다며 “형편없이 사업하는 기업이나 무능력자의 좋은 핑계거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도 다음달 29일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무역전쟁의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무역전쟁 장기화를 시사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