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 연구 대가이자 1세대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25일 오후 7시 3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한국문학의 산증인’으로 불릴 정도로 평생 한국문학 역사를 연구하고 현장에서 작품을 읽고 비평하며 우리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근대문학에서 시작해 한국문학 연구의 현대적인 기틀을 닦는 등 독보적인 학문적 성과를 이룩했다. 특히 그가 쓴 학술서, 비평서, 산문집, 번역서 등 저서는 무려 200여 권에 달한다. 또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30여년간 교편을 잡으며 내로라하는 국문학자, 문학평론가, 작가 등 수많은 문인을 배출하는 등 교육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세웠다.
고인은 1936년 경남 김해군 진영읍 사산리에서 태어나, 일제 말인 1943년 국민학교에 입학해 일본어 교육을 받았고,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마산상고를 졸업한 뒤 교장 선생이 되라는 부친의 권유와 문학을 공부하겠다는 본인의 의지로 서울대 사범대 국어과에 입학했다. 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68년 서울대 교양과정부 전임강사로 임용됐다. 이후 1975년 국문학과로 적을 옮겨 2001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대표적으로 소설가 권여선, 김탁환, 문학평론가 서영채, 정홍수, 권성우, 류보선, 신수정 등이 그 제자들이다. 고인이 맡았던 교양 과목 ‘한국 근대문학의 이해’는 오랫동안 서울대 최고 인기 강좌 가운데 하나였다. 해박한 식견과 통찰력이 깃든 카리스마 넘치는 강의로 국문학도들뿐만이 아닌 일반 수강생들마저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등단한 뒤 문학 현장에서 잠시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수십년 동안 쉬지 않고 문예지에 발표된 거의 모든 소설 작품을 읽고 월평(月評·다달이 하는 비평)을 작성했다. 이는 젊은 평론가들에게도 벅찬 일인데, 80이 넘은 연로한 나이까지 해낸 것이다. 고인은 왜 아직도 월평을 쓰느냐는 주변의 물음에 “그냥 월평을 썼을 뿐”이라며 “작품 쓰기(창조)가 자기 일이 아님을 깨닫지 않는다면 위대한 비평가가 될 수 없다”는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의 말을 인용해 대답하기도 했다. 고인은 특히 오직 작품만으로 평을 쓴다는 원칙을 고수해 세대를 불문하고 작가들에게 존경받았다. 그는 “작가는 누구의 자식이며 어디서 낳고 어느 골짜기의 물을 마셨는가를 문제 삼지 않기. 있는 것은 오직 작품뿐. 이 속에서 나는 시대의 감수성을 얻고자 했소. 내 자기의식의 싹이 배양되는 곳”이라고 글에서 밝혔다. 이외에도 문학계 원로이면서도 신인 작가들에게까지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학자로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석사학위를 받은 직후부터 일제강점기 좌익 문인단체인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연구를 비롯해 한국 근대문학사 연구의 틀을 구축했다. ‘한·일 근대문학의 관련양상 신론’, ‘한국근대문학양식논고’, ‘한국근대문학사상사’ 등 연구서와 작가론 ‘이광수와 그의 시대’, ‘염상섭 연구’, ‘김동인 연구’, ‘이상 연구’, ‘임화 연구’, ‘김동리와 그의 시대’, ‘박경리와 토지’ 등이 대표 저작이다. 또한 당대 현장비평을 담은 ‘우리문학의 넓이와 깊이’, ‘우리 소설의 표정’, ‘현대 소설과의 대화’, ‘소설과 현장비평’, ‘우리 소설과의 대화’, ‘혼신의 글쓰기 혼신의 읽기’ 등과 예술기행집 ‘문학과 미술 사이’, ‘황홀경의 사상’, ‘환각을 찾아서’, ‘설렘과 황홀의 순간’, ‘낯선 신을 찾아서’ 등을 편찬했다. 이런 저서들이 2000년까지 무려 100권에 달해 이듬해 정년퇴임을 기념해 이 책들의 서문들을 한데 모은 ‘김윤식 서문집’을 내기도 했다. 이후 지난해까지 50여 권을 더 써내 ‘김윤식 서문집’ 개정증보판을 냈다. 이 책에 따르면 그가 남긴 저서는 단독 저서 159종(개정증보 9종 포함), 역서 7종(개정판 1권 포함), 편저 28종, 공저 15종(개정 2종 포함) 등이다. 개정판까지 합하면 총 209종, 초판만으로는 197종이다.
고인은 2001년 9월 정년퇴임 강연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고 문학을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갈 수 있고, 가야할 길, 가버린 길-어느 저능아의 심경고백’이란 제목의 이 강연에서 “문학 읽기는 한갓 여기(학문연구를 위한 보조수단)가 아니라 ‘길찾기’였던 만큼 필사적일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문학의 위기 또는 종말론에 대해 “동물적인 상상력을 대신한 식물적 상상력의 시대가 오고 문학은 민들레 씨앗의 포자처럼 식물적 상상력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인은 200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으며, 예술원 문학분과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황조근정훈장(2001)과 은관문화훈장(2016)을 수상했으며 현대문학신인상, 한국문학 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편운문학상, 요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학술 부문), 청마문학상도 받은 바 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가정혜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유족은 조화와 조의금을 정중히 사양했다. 오는 27일 오후 5시께 장례식장 행사장에서 추모식을 열고, 오는 28일 오전 7시께 발인할 예정이다. 묻힐 곳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노진표 인턴기자 jproh9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