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외교공관의 불가침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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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톈안먼 사태 다음날인 1989년 6월5일 중국의 반체제 물리학자 팡리즈(方勵之)는 아내와 함께 주중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한 뒤 망명을 요청했다. 탱크를 앞세운 중국 인민해방군이 시위대를 진압한 후 민주화운동가와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중국 당국의 탄압이 거세지자 더 이상 중국에서 민주화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 대사관 출입을 통제하는 등 팡리즈의 망명을 막기 위해 온갖 압력을 넣었으나 미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부 장관까지 베이징에 보내 덩샤오핑과 직접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중국은 13개월간의 줄다리기 끝에 팡리즈의 미국행을 묵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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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리즈의 망명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외교사절 공관을 보호하도록 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덕분이다. 1961년 4월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채택된 이 협약은 외교사절의 체포·구금 금지와 외교사절단 공관에 대한 불가침을 규정하고 있다. 영사관 직원과 공관도 1963년 4월24일 채택된 ‘영사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중대한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면 불가침의 보호를 받는다. 이 같은 특권 때문에 외교사절 공관은 종종 정치적 망명의 루트로 활용된다. 2002년 3월14일에는 탈북자 25명이 베이징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해 한국 망명을 요청했다. 이들은 다음날 중국 측에 추방된 뒤 필리핀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2016년 7월에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 참가한 북한 학생이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들어와 망명하기도 했다.

최근 발생한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사건과 관련해 외교관과 공관에 대한 특권이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사건발생 장소가 터키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이라 터키 수사관들은 카슈끄지가 사라진 지 2주일이 지나서야 사우디의 허가를 얻어 공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건 용의자들은 빈 협약에 따른 면책특권을 주장할 수 있는데다 현재 사우디에 거주하고 있어 사우디 당국이 이들을 넘겨주지 않는 이상 터키 재판정에 세우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빈 협약이 살인사건 조사를 은폐하는 보호막이 돼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터키 사법당국이 이 같은 난관을 극복하고 용의자들을 재판정에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철수 논설실장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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