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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Deal Maker] M&A는 숫자 이면의 가치가 결정한다

안윤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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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안(原案)을 받지 않으면 딜은 없던 일로 하겠다”

A사로부터 위임을 받아 B사에 대한 투자를 진행했을 때 B사가 한 얘기다. 당시 A사는 B사가 발행하는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진행 중이었다. 통상 인수합병(M&A)에서 협상 주도권은 투자자가 갖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투자를 받는 입장인 B사가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으로 사인하지 않을 거면 투자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팽팽하던 협상장은 일순간 얼어붙었다.

당시 B사는 비상장사이긴 했으나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지명도를 갖고 있었다. 실사 첫날 B사가 제공한 자료를 검토했다. 로펌은 법률 실사를 위주로 하지만 사업보고서와 재무제표 등 기본적인 회계자료를 본다. 회계지식이 많지 않은 내가 보기에도 B사의 재무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자산을 초과하는 수백 억 원의 결손금이 쌓여 있었다. 그렇다고 뚜렷한 수익사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상황이 단기간에 개선될 것 같지도 않았다.


필자는 B사 담당자에게 회사의 현재 주된 매출원과 향후 수익모델을 물었다. 그 직원은 당시에는 주된 수익원이 없으며 다만 B사에서 미래 수익원으로 고려하고 있는 일부 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그게 돈이 될까?”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이런 회사에 고객인 A사가 투자하는 이유가 궁금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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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상황은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실사 후 의구심 한 가득인 상태에서 계약서가 준비됐는데 초안을 제시한 쪽은 고객사가 아닌 B사였다. 통상 구주에 대한 양수도 거래에서는 매도인측이 아닌 매수인측이, 신주 투자의 경우에는 대상회사가 아닌 투자자측이 계약서 초안을 준비하는 것이 거래 관행이기도 하고 실제 업무상으로 효율적이다. 그런데 투자 관련 계약서(신주인수계약서, 주주간계약서 등) 초안을 B사에서 준비했는데 이는 M&A 거래 관행에 비추어 이례적인 경우다. 협상의 주도권을 B사가 쥐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는 A사와 협의해 B사가 준비한 계약서 초안의 상당 부분을 수정했고 수정안에 대해 양사가 협상을 진행했다. B사는 ‘계약서 초안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투자가 진행되었으면 한다’며 A사가 계약서 원안을 수용해 주기를 요청했다. A사는 ‘추가된 수정안은 거래 관행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B사가 수정안을 전부 수용하기 어렵다면 반대 수정안을 제시해 줄 것을 B사에 거듭 요청했다. 이는 통상적인 M&A 협상 절차이기도 하고, ‘M&A 거래 관행’에 비추어도 A사의 요청이 부당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협상 당일 서로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B사측에서 ‘만약 A사의 수정안대로 진행해야 한다면 투자를 받지 않겠다’고 한 것. M&A 협상 과정에서 그 정도의 강력한 메시지는 흔한 경우는 아니다. 또 그런 상황에서는 필자와 같은 자문사가 고객을 위해 제시할 적절한 의견을 찾기도 어렵다.

결국 협상은 A사가 수정안을 철회하는 것으로 종결됐다. 액면가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1주당 발행가액으로 거액의 투자가 최종적으로 이뤄졌다. 결과를 보고 필자는 놀라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모르는 뭔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당시 A사의 요구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 필자로서는 B사의 대응이 예상 밖이었고 A사의 자문사로서 좌절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고객인 A사의 투자 의지가 확고해 투자대상 기업의 기업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이해됐다. 당시 B사에는 A사 외에도 투자를 하려는 회사가 많았던 상황이다. 필자는 고객 입장에서 투자 성사 측면에 주력하게 되었고 법적 조언 또한 법률위반 등 수용할 수 없는 사항으로 한정하게 되었다.

그 이후 A사의 B사에 대한 투자는 특별한 이슈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B사는 훗날 상장을 했고 A사는 당초 투자한 금액의 수배에 이르는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B사가 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그러한 B사의 요구를 수용해 최종적으로 투자를 결정한 A사의 입장이 모두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B사에 대한 적절한 기업가치 평가가 선행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이 딜을 계기로 필자는 M&A 협상 과정에서 보다 유연한 태도와 여유를 가지게 됐다.

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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