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권력지도를 뒤흔들 중간선거를 코앞에 두고 수세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면 전환을 위해 펼치는 전략이 미국의 분열을 키우며 엄청난 정치적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지율 하락으로 다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인 ‘반(反)이민정책’을 재부각시키기 위해 이민자 행렬인 ‘캐러밴’ 저지에 대규모 군병력 배치를 예고한 데 이어 미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든 시민권을 주는 헌법적 규정까지 손보겠다며 보수세력 결집에 나섰지만 오히려 증오범죄를 촉발했다는 책임론과 위헌 논란만 키우고 있다.
3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이민자나 시민권 없는 사람이 미국에서 낳은 자녀에게 시민권을 주는 현행 제도를 없애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민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위헌 논란과 함께 ‘정치쇼’라는 비난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화당 서열 1위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이날 “행정명령으로 출생시민권을 폐지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미국은 미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면 자동으로 시민권을 주는 속지주의에 입각한 ‘출생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을 헌법적 규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미 법무부도 수정헌법 14조의 시민권 조항을 법안이나 행정명령으로 고치는 것이 “명백한 위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위헌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출생시민권을 없애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은 중간선거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초강경 이민정책을 계속 쟁점화해 보수층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해석된다. 진보 성향의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시민권 폐지 발언에 대해 “발표 시점이 의심스럽고 합리적 근거에 따른 법적 주장이기보다는 정치쇼로 보인다”고 비판했으며 이민 변호사인 데이비드 레오폴드는 AP통신에 “이는 다음주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캐러밴 이슈와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옥토버 서프라이즈(막판 선거 판도를 바꾸는 대형 이슈)’로 삼기 위해 ‘선거용 쇼’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소포폭탄’과 ‘유대교회당 총기난사’ 등 증오범죄가 트럼프의 분열과 공포를 조성하는 캐러밴 비난에서 촉발됐다며 민주당 측은 맞서고 있다.
공화당 지지층의 투표 참여를 극대화할 이슈로 반이민정책을 상정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온두라스·과테말라 등 중미 출신 난민 수천명이 미국을 향해 북진하는 캐러밴을 형성하자 이를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5,000명 이상의 군병력을 국경에 배치하며 선거 쟁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자 캐러밴을 둘러싼 공포 조성 전략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며 이번 선거를 ‘캐러밴 선거’로 거듭 지칭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뻔한 논란과 반대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치 프레임과 이에 기댄 캐러밴 반대 구호가 열세인 선거판에서 공화당을 구할 ‘회심의 선거전략’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이 캐러밴에 대한 근거 없는 음모설과 증오의 정치 언어를 쏟아부은 것이 최근 발생한 반트럼프 인사들에 대한 소포 폭탄 배달과 유대교회당의 총기난사 등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트럼프의 선거전략이 역풍을 맞을 조짐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분열 정치’가 극우 인사들을 부추겨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대형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는 언론의 분석에 적잖은 유권자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유대인회당 총기참사 현장을 방문했지만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초청에 불응했고 피츠버그 현지에서는 “더 이상의 증오는 안 된다”며 트럼프 반대 시위에 1,000여명이 참가하는 등 반트럼프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