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유연함이 새로운 미덕이 되고 있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이질적 요소들이 연결돼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글 안병민 대표◀
축구를 봅니다. 공격수와 수비수가 그라운드를 누빕니다. 예전에는 공격수는 공격만 하고 수비수는 수비만 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내 포지션에 상관없이 우리 팀이 공격할 땐 나도 공격수가 되어야 하고, 우리 팀이 수비를 할 땐 나도 수비수가 되어야 합니다. 이른바 ‘토털사커’입니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 전략입니다. 이러니 축구 수준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예전에는 내 역할이 고정적이었다면 이제는 경기 흐름과 맥락을 선수들이 파악하고 스스로 역할을 그에 맞춰 시시각각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 걸 우리는 창의적 플레이라 얘기합니다. 공격수가 수비를 하기도 하고 수비수가 공격을 하기도 하는, 창의적 축구 전략이 바로 토털사커입니다.
한동안 tvN의 <꽃보다할배>라는 프로그램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핵심은 배낭여행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70대, 80대 할아버지를 섭외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새로웠고 그래서 신선했습니다. 전혀 다른 극과 극을 이어 붙이니 불꽃이 튑니다. 창의의 스파크입니다. 2013년 첫 선을 보인 ‘꽃할배’가 올 여름에도 시청자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던 배경입니다.
‘토털사커’와 ‘꽃할배’에서 ‘이질의 결합’을 발견합니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이질적 요소들이 연결되어 만들어내는 창의적 혁신입니다. 공격수와 수비수, 할아버지와 배낭여행은 한없이 멀고 먼 조합입니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를 찾아내 이어 붙이니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집니다. 역발상의 시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런 역발상은 예술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가 대표적입니다. 정장에 레인코트를 입고 우산을 든 신사들이 마치 비 내리듯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의 그림 <골콘다>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빛의 지배>라는 작품도 그렇습니다. 위쪽의 하늘은 구름이 흘러가는 파란 낮인데 아래쪽 집과 거리에는 어두운 밤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이렇듯 낯섦을 빚어냅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제 각각의 사물들이 엉뚱한 맥락에 놓여있으니 파격입니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사물과 상황들이 연결되어 있으니 눈길을 끕니다. 특정한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내 이질적인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장면을 연출하는 것, 미술계에선 이를 ‘데페이즈망(d?paysement·전치)’이라고 표현합니다. 말 그대로 위치를 바꾸는 겁니다.
세상의 익숙한 모습을 비틀어 이질적 사물과 상황들을 이어 붙이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데페이즈망에서 발견하게 되는 이런 창의성은 ‘일원론(一元論)’과 이어집니다. 모든 게 달라 보이지만 결국 뿌리는 하나라는 게 일원론입니다. 근원은 하나라는 얘기입니다. ‘낮과 밤이 다르지 않고 빛과 그림자가 다르지 않으며 있음과 없음이 다르지 않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일원론은 획일적 기준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절에 가면 마주하게 되는 ‘불이문(不二門)’도 그렇습니다. 불이문은 절에 들어가는 세 개의 문 중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입니다. 번뇌와 해탈이 둘이 아니기에, 다르지 않기에 일컫는 표현이 불이입니다. 정반대의 의미로 알고 있던 개념들의 뿌리가 결국 하나라는 불가의 가르침입니다. ‘유무상생’을 역설했던 노자철학도 같은 맥락입니다. ‘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도덕경 2장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있음과 없음, 쉽고 어려움, 길고 짧음, 높음과 낮음이 서로 상반되는 적대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의 연결된 개념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게 결코 다른 게 아니라는, 맥락과 흐름에 따라 정답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삶의 통찰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예전 산업화 시대에는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는 잣대가 중요했습니다. 그 잣대로 우리는 지금껏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지식과 경험으론 세상을 설명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이어서입니다. 변화를 품어 안지 못하고 옛날의 잣대만 들이대니 세상과 자꾸 어깃장이 납니다. 그럼에도 과거에 사로잡혀 과거의 판단만 고집하는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부릅니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엔 오답이 되는 4차산업 혁명 시대, 그 시대에는 ‘유연함’이 새로운 미덕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일원론에서, 구분과 차별이 없는 불이의 개념에서, 세상만사가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노자철학에서 유연함의 지혜를 배웁니다. 유연함은 뻣뻣하기 짝이 없는 기계적인 기준을 내던지는 겁니다. 구분과 배제의 프레임에서 탈출하는 겁니다. 정답과 오답을 나누고 옳음과 그름을 구분하는 일차원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결국 나로서 독립하는 혁신의 출발점입니다.
고철 더미 넘쳐나는 쓰레기 처리장에서 열린 화려한 패션쇼, 강남의 클럽에서 열린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연주회, 디자이너와 협업해 패션디자인을 그대로 자동차에 적용한 자동차회사, 한복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호텔 객실, 국악에 전자음악을 접목한 일렉트릭 사물놀이. 이 모든 게 융합, 복합, 크로스오버,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상 변화의 산물들입니다. 창의성이 관건인 문화예술계뿐만이 아닙니다. 막걸리와 아메리카노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음료 막걸리카노, 병원과 호텔의 결합을 통해 마련된 의료관광 거점, 이동통신·인터넷 기술과 자동차기술의 만남으로 탄생한 자율주행차, 생산의 1차 산업, 제조의 2차 산업, 유통서비스 등의 3차 산업이 한데 어우러진 6차산업의 출현. 이 역시 최근 글로벌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떠오른 ‘이종결합’이란 화두에서 비롯된 변화상입니다.
이제 중요한 건 지식이나 경험이 아닙니다. 지식과 경험은 모두 과거의 산물입니다. 우리의 눈은 미래를 향해야 합니다. 과거의 기준으로 미래를 판단해선 안 될 일입니다. 열어야 합니다. 품어 안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변화에 발 맞춰 혁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조직의 많은 리더들은 아직도 과거에 머뭅니다. 과거의 성공경험에 갇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건 ‘성공의 덫’입니다. ‘경험의 감옥’입니다. 이질의 결합은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지혜의 단초입니다. 이렇게도 붙여보고 저렇게도 이어보는 겁니다.
이것과도 연결해보고 저것과도 접목해보는 겁니다. 그 역발상의 조합에서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집니다. ‘해(日)’와 ‘달(月)’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합쳐 ‘현명함(明)’이라는 의미를 만들어낸 통합과 포용, 융합의 통찰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실없는 우스개 하나 덧붙이자면, 마그리트와 노자를 이어붙여 경영에서의 창의와 혁신을 이야기하는 이 글은, 그래서 참 훌륭합니다. 아무쪼록 열심히 붙이고 무던히 이어보시길 바랍니다. 그 이질의 결합이 새로운 세상을 빚어냅니다. 그걸 우리는 혁명이라 부릅니다.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