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빅맥과 도미노 피자, 스타벅스 커피 등 미국 소비재 상품 가격이 줄줄이 인상되면서 수년간 이어져온 저물가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미국이 촉발한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이 소비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데다 10년 만에 최대폭으로 오른 미국 민간 부문 임금도 상품 가격 인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오랫동안 억눌려온 소비재 가격이 꿈틀거리자 시장 전문가들은 급격한 인플레이션 변화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를 높여 실물경기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10월3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3·4분기 맥도날드 빅맥 가격이 전년동기 대비 4.7%, 스타벅스 커피 가격은 8.9% 오르는 등 주요 소비재 가격 인상이 잇따르고 있다. 식음료뿐 아니라 가정용 제품과 항공기 탑승권, 페인트, 가방, 신발 등 가격 상승의 물결은 전 업종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애플은 최근 선보인 신형 맥북 에어와 아이패드 프로 가격을 기존 상품 대비 20~25%가량 올렸고 델타와 제트블루·아메리칸항공 등 주요 항공사들은 탑승권이나 수수료를 줄줄이 인상했다.
이 같은 미국 기업들의 가격 인상 랠리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스낵 제조업체 몬델레즈인터내셔널은 내년에 북미 지역에서 오레오 쿠키 등의 가격을 올릴 것이라고 했고 페인트 제조업체인 셔윈윌리엄스와 PPG인더스트리스도 재료비 인상을 이유로 내년 중 제품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예고했다. 셔윈윌리엄스는 올 10월에도 제품 가격을 최대 10%까지 올렸다.
스티브 커힐레인 켈로그 최고경영자(CEO)는 “오는 2019년에는 금융위기에 따른 침체 이래 우리가 봐온 것보다 더 큰 인플레이션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블레리나 우르치 바클레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내년 1·4분기에 인플레이션이 급반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상품 가격을 올리는 것은 미국이 진행 중인 무역전쟁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무역전쟁의 여파에 따른 원자재와 운송비 등의 가격 상승이 상품 가격을 끌어올리는 직접적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로 이들 원자재 가격은 각각 8%와 38% 치솟았으며 무역전쟁 격화에 따른 유가 불안으로 항공사들의 연료 가격은 지난해 대비 40%가량 올랐다.
여기에 미 경기 호조에 따른 급격한 임금 상승도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키운 주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미 노동부는 올 3·4분기 민간 부문 임금 상승률이 전년동기 대비 3.1%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2008년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시장에서는 물가 상승이 경기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파른 물가 상승을 저지하기 위해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경우 호조를 보이는 미국 경기가 급격히 꺾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연준 목표치인 2%에 근접한 가운데 기업들의 제품 가격 인상이 이어질 경우 물가상승 압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물가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꿈틀대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둔화가 전 세계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모건스탠리 국제경제연구소는 보고서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1.1%까지 떨어졌던 미국·유로존·일본 등의 근원 인플레이션이 1.4%로 올랐고 상승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발표된 10월 유로존 CPI 예비치는 전년동월 대비 2.2% 상승해 2012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