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체육·예술인 병역특례 폐지 - 반대

'우수 인력' 동기부여 필요...합리적 보완을

김학수 한국체육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초빙교수

● 세계적 예체능 스타 탄생 '특례' 덕택에 가능

● 일부 부작용은 기준 강화·엄격 관리로 막고

●인재 육성·국위 선양 좋은 점은 살려나가야

체육·예술 특기자의 병역특례를 폐지하는 방안을 놓고 찬반양론이 맞서고 있다.


지난달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찬수 병무청장은 필요하다면 예술·체육 특기자 병역특례 폐지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병역특례제도는 지난 1973년 국위 선양과 문화 창달에 기여한 예술·체육인에게 군 대신 예술·체육요원으로 복무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8월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야구 대표선수 선발 논란과 예술계에서 해외 콩쿠르 수상자를 둘러싼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특례 폐지를 포함한 재검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폐지 찬성 측은 45년 전 만들어진 엘리트 육성책이 수명을 다했으며 병역 형평·공정성 시비를 계속 불러온 만큼 특례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우수 인재를 육성하는 데 동기 부여가 필요하며 폐지보다는 합리적 기준을 만들어 보완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한국은 세계에서 압축성장한 대표 국가로 손꼽힌다. 미국·영국·일본 등과 같은 선진국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낸 근대화를 단시일 내에 해낸, 세계에서 아주 드문 나라다. 경제력·국민소득·도시화 등 서구에서 150~200년 걸렸을 변화를 불과 40~50년 만에 성취해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여러 사회·문화적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선진국형 국가를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근대·근대·탈근대적 요소가 동시에 공존하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도 한국에서 경제력과 함께 가장 압축성장한 분야 중 하나다.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후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지난 수십년간 각종 동하계올림픽에서 세계 10위권의 성적을 올리며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올라섰다. 한국 스포츠가 전례 없는 고속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총력적인 지원체제가 뒷받침됐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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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들에게 연금제와 함께 병역특례제를 실시하게 된 것은 엘리트 체육 육성책의 일환이었다. 1973년 병역특례제가 처음 실시될 때만 해도 한국 스포츠는 북한에도 뒤져 있을 정도로 열악한 형편이었다. 선수들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무대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영예라고 여겼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병역특례제와 연금제 시행은 선수들에게 큰 자극제이자 격려가 됐다. 대표선수들은 열심히 갈고닦은 실력을 국제 무대에서 성적으로 보여주며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

사실 병역특례제는 지난 수십년간 많이 바뀌었다. 처음 시행할 때는 올림픽은 물론 아시안게임 3위 입상자, 한국체육대 졸업 성적 상위 10% 이내까지 병역특례자 혜택을 줬으나 한국 스포츠가 점차 국제경쟁력을 갖춰나가면서 규정도 대폭 강화됐다. 현재는 △올림픽 3위 이상 입상자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입상자 △국제대회가 없는 분야의 국내예술경연대회 1위 입상자 등에게만 체육·예술 병역특례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병역특례제의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혜택을 받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공정성과 형평성 논란이 빚어졌다. 특히 2018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야구·축구 등의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 일부 시비가 생기면서 병역특례제 존폐 문제가 거세게 제기됐다.

잦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병역특례제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전면적 폐지보다는 문제점을 점진적으로 보완하는 쪽으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기여한 부분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다. 야구에서 박찬호·류현진, 축구에서 박지성·손흥민 등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이 한국 스포츠를 빛낼 수 있었던 것은 병역특례를 받고 자신의 기량을 크게 발휘했기에 가능했다. 예술 분야도 피아노의 조성진이 일찍이 병역특례 혜택을 받아 세계 무대에서 자랑스럽게 인정받는 스타가 됐다.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 이들에게 적용된 병역특례제는 그동안 극소수의 인원에게만 혜택이 주어졌으며 많은 이들에게는 동기 부여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존속해야 한다. 특히 실력 있고 재능이 뛰어난 인재를 키워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서는 젊음과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20대의 나이에 병역특례를 부여해주는 제도는 바람직하다.

일부 프로 종목에서 병역 기피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시비가 생기지 않도록 공정성과 형평성을 확보하고 엄정히 관리한다면 최근에 벌어진 일과 같은 문제점 등은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다. 전격적으로 폐지해서 스포츠와 예술계에 큰 충격을 주기보다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제시한 마일리지제도와 같이 예전에 했던 것처럼 현재보다 기준을 좀 더 강화하고 엄격하게 운영해나갈 경우 병역특례제는 선의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만의 좋은 강점, 유리한 제도를 살려 나가 스포츠·예술계의 뛰어난 인재를 계속적으로 배출해야 한다. 결코 구더기 무섭다고 장을 못 담그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잘 쌓았던 전통을 일부의 문제점 때문에 전면적으로 허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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