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육안으로 보이는 북한의 섬과 해안에는 얼마 전까지 해안포가 빽빽이 자리잡고 연평도를 노렸다. 5㎞ 가량 떨어진 ‘갈도’에는 2016년 김정은 국방위원장(당시)이 122㎜ 해안포부대를 방문한 적도 있다. 갈도 뒤로 보이는 장재도에는 76.2㎜, 122㎜ 해안포를 갖춘 1개 중대급 부대가 주둔 중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7년을 비롯해 4번이나 방문할 만큼 장재도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두 섬 사이로 보이는 육지가 그 유명한 ‘개머리 지역’. 우리 해병대 초소와 12㎞ 떨어진 개머리 지역은 지난 2010년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북한 포병대가 자리 잡은 곳이다.
언제든지 우리를 칠 수 있는 지근 거리의 북한군 해안포를 마주 보고 있는 연평도에는 새로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상호 적대행위를 금지한 9.19 군사분야 합의에 따라 우리 군은 해상완충구역 포사격 중지, 해안포 10문에 덮개를 설치하고 포문을 막았다. 해병대는 이에 따라 전투배치 비사격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박격포와 발칸은 정상적으로 사격 훈련이 진행 중이다. 사격장에서는 100% 명중률을 보였다. 부대 지휘관은 취재진에 “해병대가 전투수행능력과 사격능력을 배양할 기회”라고 말했다.
연평도의 해병 장병들은 부대장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듯 ‘빡세게’훈련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사격 훈련이지만 다른 나라 군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도 높은 체력 및 전술 훈련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반복했다. 연평도 장병들은 “몸이 전투 절차를 기억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스며 들었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해병부대의 보고를 받은 박한기 합참의장은 북측 지역을 등지고 서서 “접경지역에서의 지상, 해상, 공중의 모든 적대행위 중단 조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길의 첫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 군은 한반도 평화 맨 앞자리에 서겠다. 우리 군은 만발의 군사대비태세가 완비된 가운데 9·19 군사합의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강력한 힘으로 뒷받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심승섭 해군참모총장도 서해 2함대사령부를 찾아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하고, 9.19 남북 군사합의서 이행에 따른 해군 조치사항을 확인했다.
연평도 취재 도중, 개머리 지역 해안포에 대한 군 관계자의 즉석 브리핑이 이어졌다. 북한의 해안포가 지난 달 25일 폐쇄됐는데 유독 포 하나가 여전히 개방된 상태라는 것. 우리 군 당국은 북한에 현재 포문 1개가 개방돼 있다며 조치를 요구했고 이날 아침 북측에서 회신이 왔다. 상부에 보고 해서 조치하겠다는 답신에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철제 포문이 정비 불량이나 고장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닫을 수 없는 상황일 수 있다”며 “새벽에 작업하는 북측 인원들이 포착됐다는 점에서 의도적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북측 장재도에도 해안포 포문 2개도 열렸다는 징후가 취재진의 눈에 들어와 잠시 술렁였다. 해병대는 이에 대해 “북측이 모의진지 비슷하게 속이려고 만든 위장포대”이라며 “해안포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열려 있다고 카운트 안한다”라고 설명했다.
연평도 주민 박태원(58세)는 “아직까지는 긴장완화가 실감나지 않는다”면서도 “믿기지 않는 평화 상황이 서해 5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더 불안하기도 하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어장 관리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기대와 우려를 뒤로 하고 찾은 연평도 안보교육장. 2010년 포격 도발 당시 현장 보존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무너진 민간 가옥과 계단, 검게 그슬린 벽면. 여기저기 흩어진 LPG 가스통이 두 가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전쟁의 참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점과 평화를 추구하되 비상시를 대비하라는 점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둘러본 연평도를 뒤로 하고 헬기에 올랐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태양에 비친 조국의 섬과 바다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