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파국 갈림길 선 국민연금개혁] 20년만의 수술인데..."모두 만족은 최악 선택, 결국 혈세 투입"

<상>공약 집착에 더 꼬였다

대선공약 주도한 金 사회수석 "당장 더 낼 필요는 없다" 지론

소득대체율 50%에 보험료는 1~1.5%P 소폭 올리는 안 검토

"성인 절반 혜택 못받아...연금강화→노인빈곤 해결 발상은 위험"

김연명(왼쪽) 신임 청와대 사회수석이 지난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 순서를 기다리며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김연명(왼쪽) 신임 청와대 사회수석이 지난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 순서를 기다리며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처음으로 ‘포용국가전략회의’를 열고 ‘포용국가 비전과 전략’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연금비용은 내수 유지 차원에서 적정 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 밑그림을 그린 사람이 당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정과제지원단장이었던 김연명 신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이다.


대표적인 국민연금 강화론자로 꼽히는 김 수석은 “연금지출을 ‘비용’으로 생각하는 인식에 전환이 필요하다. 적정 수준의 연금을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규 수급자가 매달 받는 국민연금액은 52만3,000원에 불과한데 이를 65만원까지 올리자는 것이다. 그래야 기초연금 30만원을 합쳐 최저 노후생활비(104만원)에 근접하게라도 노후소득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 수석은 지난 대선 때부터 문재인 대통령을 도와 ‘소득대체율 인상’을 대선공약과 국정과제로 굳히는 데 관여한 당사자다.

‘주는 돈(소득대체율)’이 많아지면 ‘내는 돈(보험료율)’도 많아져야 재정수지가 맞지만 김 수석은 보험료 인상에 대해서는 “당장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그는 평소 “현재 국민연금 적립기금 규모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7%로 일본(28%), 스웨덴(29%)보다 많다”며 “기금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 미래 연금 지급을 위해 기금을 헐 때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로 기금을 더 쌓을 필요가 없다고도 주장해왔다. 미래 기금이 소진되면 독일·프랑스처럼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고 세금을 투입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더 받되 당장 더 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김 수석의 지론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새로 짜고 있는 국민연금 개편안도 ‘소득대체율 50% 인상’에 무게추가 실리게 됐다. 문 대통령이 7일 20년 만의 보험료 인상을 뼈대로 한 보건복지부의 초안에 퇴짜를 놓고 이틀 만에 김 수석을 임명한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이달 내 새 개편안 공개를 목표로 재작업 중인 정부는 소득대체율은 50%로 끌어올리되 보험료 인상폭은 종전에 제시했던 3~6%포인트에서 1~1.5%포인트 안팎으로 대폭 줄이는 안을 다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료 인상 최소화, ‘눈 가리고 아웅’”= 김 수석 주도하에 만들어질 새 개편안에 대해 대부분의 연금 전문가들은 “개혁은커녕 미래 세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개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추산에 따르면 보험료 인상 없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경우 기금소진 시점은 오는 2057년에서 2054년으로 3년 더 앞당겨진다. 김 수석은 기금이 고갈되면 그해 걷은 보험료 수입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된다지만 전문가들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꼬집는다. 점진적 보험료 인상 없이 기금 소진 후 부과 방식으로 급전환을 하면 70년 후 미래세대는 소득의 38%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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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를 올려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지금보다 더 커지면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김 수석의 논리에 대해서도 반론이 팽팽하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르웨이국부펀드도 자산이 노르웨이 GDP의 200% 이상 되지만 전부 해외 투자로 안정적인 운용 수익을 내고 있다”며 “‘있는 돈을 어떻게 쓰느냐’보다는 ‘없는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더 큰 숙제”라고 지적했다.

◇46%는 못 받는데…국민연금 강화만 능사?= 국민연금만 강화하면 노인빈곤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처럼 약속하는 것도 전문가들은 ‘위험한 허상’이라고 강조한다. 올해 3월 기준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18~59세 인구는 총 3,099만명이다. 하지만 이 중 소득이 없어 가입을 못했거나 가입했어도 보험료를 못 내 노후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1,428만명으로 전체의 46.1%나 된다. 국민연금액을 올려도 저소득층이 대부분인 절반 가까이는 그 혜택을 못 본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전문가와 복지부 사이에는 명목대체율을 올리는 것보다 국민연금 가입자를 늘려 연금수급권을 주는 게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하지만 김 수석이 연금개혁의 키를 쥐면서 다시 입장을 바꿔야 할 처지가 됐다.

성인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라는 사실은 ‘기금고갈 시 재정을 투입하면 된다’는 주장의 타당성도 떨어뜨린다. 올 4월 방한한 연금 전문가 크리스토프 하게메예르 본라인지크대 명예교수는 “독일·프랑스는 국민 거의 모두가 연금 가입자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에서 세금을 투입한다면 정당성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후에 돌려받을 사람만 내는 보험료와 달리 세금은 전 국민이 내는 만큼 혜택 보는 사람이 전체의 46%에 불과한 국민연금을 세금으로 보조하는 것은 세대 간 형평성은 물론 세대 내 형평성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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