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지난주 미국 중간선거의 결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금융시장 패닉은 진정세에 접어든 모양이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렇더라도 전 세계 주요시장 중 최악을 기록한 지난 10월의 국내 주가 폭락을 비이성적 과잉반응이나 ‘찻잔 속의 태풍’으로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한국 경제는 성장의 3대 요소인 투자·생산·소비가 동반 추락하면서 악화일로다. 미 중간선거 이후 국제통상 마찰과 미중관계 경색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세계 경제의 먹구름도 짙어지고 있다.
경기선행지표인 주가의 변동성은 불안감이 커지면 올라가고 시장은 생물체 같아 느끼는 대로 반응한다. “시장은 거짓말하지 않는다(market never lies)”라는 말처럼 변동성 확대는 경제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경기악화를 경고하는 신호다. 공장가동률이 73%로 외환위기 후 최저수준으로 떨어지고 핵심기업 경쟁력이 뒷걸음치는데 ‘협력이익공유제’ 법제화 등을 서두르니 투자자의 혼란은 커진다. 단기적 주가등락에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더라도 지난달 외국인의 주식자금 이탈 규모가 5년여 만의 최대치인 40억달러를 넘어선 것은 ‘대한민국 주식회사(Korea Inc.)’의 투자매력이 없어지는 방증이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급속히 약화하는 시점에서 “펀더멘털이 좋다”는 상투적인 발언은 투자자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국내 증시 침체의 주범은 주식 ‘공매도’가 아니라 성장정책 ‘공회전(空回轉)’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자동차부터 반도체까지 제조업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이런 와중에 국가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다면 그것은 정말 위기다. 경제동력 회복이 시급한 이유에는 위기가 본격화될 경우 위기탈출이 과거보다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왜 그럴까.
첫째는 금리통화정책의 한계다. 경제위기 극복의 핵심수단인 금리 인하와 유동성 확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금리 인상과 디레버리징(부채감축)이 당면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둘째로 대규모 재정 팽창의 부담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복지지출 등 재정수요 급증으로 유사 시 나랏돈 풀 여력은 줄어들고 있다. 다음번 위기극복이 힘든 셋째는 최근 국내경기 하강 추세와 체력 약화가 유동성 위기의 급성질환과 달리 치유가 어려운 구조적 만성질환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중국의 경기악화와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이다. 과거 위기상황에서 버팀목이었던 중국 경제가 다음에는 걸림돌이 될 개연성이 크다. 다섯째로 국제공조체제의 변화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촉진했던 주요20개국(G20)체제의 효율적 작동은 앞으로 기대하기 쉽지 않다. 10년 전 한미 통화스와프는 양국 정부의 깊은 신뢰로 가능했지만 지금은 한미공조가 예전만 못하고 일본과의 갈등이 풀리지 않으면 한일 통화스와프도 어렵다.
치료가 어려우면 예방이 중요한데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의 지속적인 한국 성장률 하향조정에 이어 최근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올해와 내년도 성장 전망치를 잠재성장률 이하로 낮췄다. 지난주 세계적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내년 한국의 성장률이 2%대 초반으로 추락하는 구조적 장기침체의 비관적 시나리오까지 내놓았다.
정부의 3대 국정기조인 소득주도·혁신성장·공정경제는 각기 좋은 의도라도 상충 문제로 인해 동시 추진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모양 다른 세 바퀴의 수레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고 액셀과 브레이크를 같이 밟으면 나아갈 수도 없다. 정책은 타이밍과 우선순위가 관건이다. 더 늦기 전에 과감한 규제·노동개혁으로 기업경쟁력과 성장잠재력 제고에 집중해야 한다. 환절기에 독감을 피하려면 체질개선과 체력강화가 필수다.
모든 위기에는 사전 징후가 있다. 각종 경제지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성장엔진은 급속히 식어간다. 시장과의 소통이 중요한 시점에 한가한 ‘위기 논쟁’은 국민의 불안과 투자자의 불신을 키울 뿐이다. 지난주 경제 투톱 교체에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이유다. 시장의 신뢰는 정부의 올바른 상황인식과 적극적 대처 방안에서 출발한다. 이념과 정치를 떠나 성장 친화적 정책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시장의 절박한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