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타이완' 국명 찾기

미국과 중국의 수교는 예기치 않은 해프닝에서 시작됐다. 1971년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미국 선수 글렌 코완이 자국팀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우연히 중국팀 버스에 올라탄 것이 핑퐁외교의 발단이다. 이튿날 열아홉 살 코완의 “중국을 가보고 싶다”는 한마디는 적성국인 중국과의 수교로 가는 실마리가 됐다. 이듬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이 코완의 바람대로 미국 탁구대표팀을 중국으로 초청한 데 이어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1979년 두 나라의 수교는 대만으로서는 외교적 재앙이었다. 당장 국제무대에서 부르는 국가 명칭부터 바꿔야 했다. 여태껏 써온 ‘중화민국’이라는 국호가 국제사회로부터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중국의 거센 압박 때문이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부터 암운이 드리웠다. 대만은 캐나다로부터 중화민국이라는 국명을 쓸 수 없다는 통보를 받자 결국 대회 개막 사흘 전 보이콧을 선언하고 만다. 대만은 우여곡절 끝에 198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합의한 ‘차이니스 타이베이’라는 국명으로 올림픽 무대에 다시 참가하지만 여러 제약이 뒤따랐다. 국기인 ‘청천백일기’ 대신 대만올림픽조직위원회기를, 국가도 ‘올림픽국기가’를 써야만 했다.


대만은 내부적으로 헌법상 국명인 중화민국으로 부른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여러 가지를 혼용한다. 올림픽 때 쓰는 차이니스 타이베이 외에도 ‘타이완, 차이나’ ‘타이베이 차이나’ 등을 쓰기도 한다. 모두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부르는 대만은 중국 입장에서는 용납 못 할 국명이다. 대만의 영어 명칭인 타이완은 대만섬 원주민 언어로 ‘외지인’이라는 뜻의 ‘따요완’에서 유래했는데 독립론자들이 선호하는 국명이다. 2년 전 집권한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은 탈중국 노선의 중심에 서 있다.

관련기사



대만이 2020년 도쿄올림픽 때 쓸 국명을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24일 국민투표에 부쳐질 국명은 분리주의 노선을 반영한 타이완. IOC는 이미 불허하겠다고 공언한 마당이라 국명 교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번 국민투표는 현 집권세력이 주도하는 대만의 탈중국화 진로를 가늠해볼 변곡점이 된다. 두 개의 중국은 있을 수 없다는 중국, 중국과 다르다는 대만 사이의 파고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권구찬 논설위원

권구찬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