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수는 ‘출국’을 진정성 있는 영화란 한마디로 설명했다. 그는 신인감독이 건넨 시나리오에서 ‘믿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어떤 감독님보다 꼼꼼하게 준비를 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분이다. 이런 분이 데뷔를 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믿음이 가는 첫 미팅이었다”고 회상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느꼈어요. 그 무렵에 읽었던 자극적인 오락영화든 이런 시나리오들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이 작품에 눈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았어요. 자극적이고 쾌감을 주는 영화가 쏟아지던 차에 모처럼 진정성 있는 영화를 만난거죠. ”
14일 개봉 예정인 영화 ‘출국’(감독 노규엽)은 1986년 분단의 도시 베를린에서 서로 다른 목표를 좇는 이들 속 가족을 되찾기 위한 한 남자의 사투를 담은 작품.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절, 시대와 이념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길남 박사의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을 모티브로 만든 실화 영화 이다.
연기 경력만 29년인 베테랑 연기파 배우인 이범수는 ‘출국’ 속 낯선 땅에서 가족을 되찾기 위해 홀로 사투하는 한 남자로 분했다. 이범수는 “‘영민’은 자상함과 책임감,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하지 않은 그 당시 평범한 아버지”라며 “인간 본연의 고뇌와 아버지로서의 사명감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실제로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이범수는 “오영민이란 인물을 아빠로서 나 역시 응원하고 싶었고 안아주고 싶었다. ”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더했다.
“어렸을 때는 또 어린 배우일 때는 미처 보지 못했을 것을 가정을 갖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보니 새롭게 느끼는 게 있어요. 가정을 이루고 실제 아이의 아빠가 아니었다면 느끼기 힘들 감정들을 더 깊이 그리고 진하게 느꼈다고 할까요. 이 아빠의 고뇌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현장에서도 아이에게 화를 내고 달래고 안아주고 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지 않았나 생각을 해봐요.”
이범수는 ‘출국’을 흥행 여부를 떠나, “배우로서 성장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소중한 건 배우의 소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출국’은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자 세상과 함께 소통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가면 갈수록 기분 좋은 영화로 기억 될 것 같아요. 작품 안에서 아빠로서 멋지게 활약하는 것도 아니고, 이 영화가 몇백만 혹은 몇천만 관객이 들 영화도 아니지만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죠. ”
노규엽 감독은 작품에 대한 확고함은 물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이범수의 필모그래피를 꼼꼼하게 분석했다고 한다. 당시는 ’인천상륙작전‘ 등 악역 전문 배우로 활약하고 있을 때 였다. 이범수는 “내 가능성을 알아봐 준 감독이 제안이 작품이란 점이 좋았다” 며 “무엇보다 풍부하고 세밀한 감성연기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렸다”고 고백했다.
“한참 악역 제안을 많이 받았던 시기에 ‘출국’ 제안을 받았어요. 그래서 물었죠. ‘왜 악역을 주로 하고 있는 나에게, 부성애를 필요로 하는 역할을 내게 줬느냐?’고. 그랬더니 제가 30년 가까이 한 영화 작품을 쭉 분석 했더라구요. 요즘 악역 연기 한 것 뿐 아니라 그 전부터 보여줬던 작품들 모두를요. 제 속에 잠재됐던 어떤 인간적인 모습은 물론 그런 것에 대한 기대치와 가능치를 노감독은 다 알아보고 있었어요. 남다른 감독이구나란 생각에 바로 ‘오케이’란 답을 줬죠.”
“모처럼 배우가 개인의 연기력을 펼칠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배우로서 감성연기에 도전하고 싶고, 새롭게 시도 해보고 싶었죠. 나도 그런 시도를 좋아하는데 통하는 감독을 만났으니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 속 ‘영민’은 가장인 자신의 성공이 곧 가족의 행복이라 굳게 믿는 80년대 당시의 평범한 아버지이다. 영화는 히어로 아빠를 그리지 않는다. 뚝심있게 밀고 가는 감독의 시선이 영화의 진정성을 더한다. 이에 대해 이범수는 “노규엽 감독은 한 인간이 성공하지 못했지만, 올 곳이 가족을 찾고자 몸부림 치는 한 인간을 보여주고 싶었했다”며 거기서 진정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할리우드 영화 ‘테이큰’과는 전혀 결이 다른 영화이다고 잘라 말했다.
“이 영화를 보시기 전엔, 아버지의 부성애는 부성애대로 보이고, 또 한편으론 화려한 첩보활극을 보여줄거라 예상하실 수 있어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혹은 영화가 완성된 이후에도 한 번쯤은 떠올려봤던 포인트라고 봐요. 그런데 그것이 어떤 상업적인 포인트 혹은 외적인 포인트가 되는 건 경계해요. 흥미와 볼거리 위주의 포인트를 당연히 염두 해 두지않을 수 없으니까요. 또 다른 상업적 코드를 넣을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본인 스스로 우직하게 그렇게 인간 하나에 포커싱 해서 밀고 나갔어요. 전 그게 순수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감독 의도가 그렇다면 배우인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죠.”
‘출국’은 흥행 공식에 맞지 않는 신생 제작사 그리고 신인 감독과 작업한 작품이다. 이범수는 시사회 때 영화를 본 후 “완성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며 “시사회 후 감독 손을 잡고 ‘영화 잘 봤다. 수고했다’”고 말했던 일화도 전했다.
“시사회 때 처음 영화를 보고 기분이 좋았어요. 만듦새에 있어서 뭔가 삐그덕 거리고 뭘 만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뒤죽박죽 이었다면 안도하지 못했을 텐데, 완성도가 있는 영화였어요. 기자간담회 자리로 이동할 때, 나가자마자 이야기 해주고 싶어서 바로 ‘수고했다’고 말했죠. 감독이 제일 듣고 싶어 했던 한마디 아니었을까요.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가족들, 또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수고했다는 말 듣고 싶겠죠. 게다가 함께 한 주연 배우에게는 얼마나 듣고 싶었겠어요? ”
‘출국’은 이범수에게 가장 소중하게 기억될 영화이다. “배우로서 나이를 먹고 또 가정을 이루고 또 아빠가 되면서 더더욱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삶의 깊이도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깊이, 고뇌에 대한 깊이가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오네요. ‘출국’은 부성애란 한 단어로 요약되기도 하는데, 가슴의 울림이 오래갈 수 있는 영화라고 자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