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벌금형만 받아도 항공사 임원의 자격을 박탈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진에어 경영권을 박탈당할 가능성이 생겼다. 검찰은 조 회장을 지난 달 27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했고, 첫 재판은 이달 말로 확정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14일 항공사의 임원 자격 제한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항공산업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개선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폭행이나 배임, 횡령 등 형법을 위반하거나 계열사간 일감 몰아주기, 불공정거래, 조세·관세 포탈, 밀수 등으로 처벌 받는 경우에도 임원 자격이 제한된다. 또 임원 자격 제한 기간은 금고 이상 실형이 확정되면 5년, 벌금형만 받더라도 2년간 임원 자격이 제한된다. 현재는 항공사 임원이 항공 관련법을 위반한 경우만 임원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금고 이상 실형을 받는 경우는 3년, 벌금형은 제재가 없었다.
해당 법 개정이 완료되면 조 회장의 대한항공·진에어 경영권이 박탈될 가능성이 커진다. 조 회장은 지난달 27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이 기소했다. 조세 관련법 위반, 약사법 위반 등의 혐의도 받고 있고, 밀수·탈세 혐의에 대해서도 아내·자녀들과 함께 관세청의 조사를 받고 있다. 현행 기준대로라면 조 회장의 횡령·배임 등의 혐의가 확정되더라도 임원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새로운 기준이 적용된 이후 혐의가 확정되면 임원 자격에 제한을 받게 된다. 특히 벌금형만 받아도 2년간 임원 자격이 제한된다. 조 회장과 마찬가지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자녀들의 경영 복귀도 어려워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토부는 또 사망·실종 등 중대사고를 내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임원이 있는 항공사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1~2년간 운수권 신규 배분 신청 자격을 제한하기로 했다.
한 항공사가 독점 운항하는 노선은 5년마다 운임·서비스 등을 종합 평가해 나쁜 평가를 받을 경우 운수권 회수도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한다. 현재 국적 항공사들은 중국·몽골 등 60개 노선을 독점하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독점 항공사들이 운임을 비싸게 받거나 성수기에만 비행기를 띄우는 등 ‘배짱영업’을 한다는 불만이 많았다. 개정이 이뤄지면 독점 노선에도 경쟁 효과가 생겨 항공 요금이 싸질 수 있다. 또 운항 횟수도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는 어떤 노선이든 연간 20주 이상 운항하면 해당 노선 운수권을 유지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노선의 등급을 4개로 나눠 ‘가등급’은 연 40주 이상, ‘나등급’은 연 30주 이상, ‘다등급’은 연 20주 이상, ‘라등급’은 연 15주 이상 운항해야 운수권이 유지된다. ‘가등급’에는 중국·프랑스 등 선호도가 높은 노선이 포함됐다.
항공기 이·착륙 허용 능력을 의미하는 슬롯(slot) 배분 업무에서 항공사 직원의 참여를 배제하고 국토부가 전담해 업무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도 나왔다. 기존에는 대형 항공사 직원이 관여해 저비용항공사(LCC)와 같은 신규 진입자가 슬롯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진현환 국토부 항공정책관은 “관련법·시행령 개정 등 제도 정비를 신속히 추진해 내년 상반기부터는 순차적으로 개선 방안을 시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