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집행부는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채용공고를 연기할 것을 회사에 요청했고 이후 느닷없이 퇴직 3년 이내 조합원 자녀 등의 고용을 요구했습니다. 회사는 업무상 어려움을 밝혔으나 그 명단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 21일 공개한 현대차 협력업체의 소식지에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울산지부 소속 S사 노동조합의 탐욕이 적나라하게 담겨져 있다. 노조는 사측에 ‘퇴직 시점 기준 전후로 3년이 안 된 조합원 자녀’ ‘퇴직을 4년 앞둔 조합원 자녀’ ‘조합원 친인척과 지인’ 등의 순으로 ‘고용세습’의 우선순위를 제시하는 치밀함을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올해 2월 생산계약직 신규 채용과 관련해 “고용인원 12명 중 10명을 조합원 자녀로 해달라”는 집행부의 요구를 회사가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 뒤 추가로 20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내밀며 고용을 강요하는 대범함도 보였다. 하 의원은 “고용세습 우선순위를 종합해보면 부모를 노조원으로 두지 못한 청년은 4순위에 해당된다”며 “4순위는 사실상 S사에 취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로자 일부가 민주노총 지도부에 이런 부당함을 바로잡아달라고 신고를 했는데도 민주노총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회사 측이 그동안 관련 사실을 숨겨오다 노조의 요구가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어 폭로했다는 게 하 의원의 설명이다. 달리 말하면 숨겨진 고용세습 사례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S사에 국한된 얘기가 아닐 가능성도 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달 기준 고용세습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유지하고 있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는 현대차·금호타이어·현대로템·성동조선해양·S&T중공업·S&T대우·TCC동양·두산건설·태평양밸브공업 노조 등 9곳이다. 고용부가 파악하고 있는 것만 이 정도다.
이런 민주노총이지만 정권 차원의 고용세습으로 볼 수 있는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는 매번 강경투쟁하고 있다. 심지어 민주노총은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자회사 설립을 추진해도 낙하산 인사를 위한 것 아니냐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인 셈이다.
사실 민주노총이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사안은 고용세습뿐만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자면서 비정규직을 배제한 채 정규직만으로 구성된 노조를 꾸리거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반대하는 등 근로시간은 줄이자면서 임금은 올려달라고 외친다. 이외에도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는 불참하고 ‘노조할 권리’를 부르짖으면서 ‘경영 자율성’을 요구하는 경영계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용자 측으로 기울어졌을 때는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바꾸자고 강조하다 다시 근로자 쪽으로 기울어지자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도 일종의 이율배반이다.
전문가들은 민주노총이 적폐청산을 부르짖기 위해서는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차원적 이해관계로 똘똘 뭉쳐 있는 이들이 사회에 대해 적폐청산을 말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내 사람을 먼저 챙기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전근대적 적폐”라며 “(민주노총은) 자기 흠을 덮으려 반정부 투쟁 구호만 일삼을 게 아니라 자성적인 입장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