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사실 왜곡해 원자력 과학자 자긍심 상처주면 안된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미온적이던 하재주 원자력연구원장이 그제 이임사를 끝으로 26년간 근무했던 연구원을 떠났다. 형식은 자진사퇴였지만 원자력 연구에 누구보다 정열과 애정을 쏟았기에 그의 사퇴는 여러모로 석연찮다. 하 원장은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한 공로로 과학기술훈장을 받은 원자력 석학으로 현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해 3월 취임해 임기를 14개월이나 남겨둔 상황이었다.


사임의 표면적 배경은 원자로 폐기물의 잇단 무단매각이다. 기관장으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폐기물 부실관리 사건은 원장 취임 이전에 발생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 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난주 연구원 노조는 성명서에서 “정무적 판단으로 집요하게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며 “탈원전의 부작용을 가리려는 의도”라고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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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원장은 이임사에서도 착잡한 심경의 일단을 드러냈다. 그는 새 정부 출범 이후의 탈원전 정책과 관련해 “연구원의 정체성과 원자력 기술의 가치에 대해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해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주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는 “과학적 사실에 입각한 비판으로 잘못된 것은 바로잡되 과학기술자의 자긍심은 지켜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과학적 근거도 없이 원전이 막연히 위험하다는 논리와 주장이 난무하는 현실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인 그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과속 탈원전 정책에 희생양이 된 원자력 유관기관장은 그만이 아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도 중도에 물러났다. 영역은 다르지만 통계청장도 돌연 교체돼 ‘코드 인사’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과학계는 정치적 성향과는 거리가 멀고 전문성 축적이 중요한 분야다.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기관장을 이렇게 쫓아내면 과학계의 맥이 끊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는 국가경쟁력도 떨어뜨리는 일이다. “자긍심만은 지켜달라”는 과학계 석학의 절박한 호소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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