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거래에 대해 두 개 이상의 회계처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전규안 숭실대 교수는 23일 여의도 전경련에서 열린 ‘원칙중심 회계기준과 회계’ 특별세미나에서 “원칙중심의 회계기준 하에서 회계감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원칙중심의 기준이 존중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회계학회는 지난 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에 고의 회계분식 혐의가 있다고 결론 내면서 원칙중심의 회계처리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이날 특별 세미나를 개최했다.
전 교수의 발언은 원칙중심의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된 지 7년이 넘었지만 실제 현장에서 적용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IFRS는 국내 기업의 회계 투명성 확보와 코리아디스카운트 완화 등을 목적으로 2011년 단계적 수용이나 컨버전스 방식이 아닌 전면도입 방식인 ‘빅뱅(Big Bang)’ 방식으로 도입됐다. IFRS 도입은 회계시스템의 근본을 바꾸는 대작업인 만큼 도입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기 위해 정부는 2006년 2월 ‘IFRS 도입준비단’을 구성해 검토과제와 추진방안을 논의했으며 2007년 3월에 ‘IFRS 도입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후 2009년 3월에는 IFRS 도입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관련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IFRS 정착추진단’을 구성해 2010년 11월까지 운영했다.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10년 넘게 IFRS 도입을 준비해온 셈이다.
IFRS의 핵심 가치는 원칙중심 회계처리다. IFRS 도입 전 기업마다 속한 산업 및 환경이 다양하고 기업들의 경영관리 목적 및 프로세스 역시 다양한 상황 아래 원칙중심 회계처리는 기업들에 유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반면 원칙만 제시하다 보니 구체적인 회계처리 방향을 기업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는 부담도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가 고의 분식회계로 결론 나면서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했다. 전문가들은 회계처리에 대한 다양성뿐 아니라 기업들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기업의 다양성 등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영한 서울시립대 교수는 “감리당국이 특정사안에 대해 강력한 규제 동기를 갖게 될 경우 사후적 결과를 중심으로 원칙중심 처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기업이나 감사인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며 “규제기관은 기업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바이오의 경우 제재 절차 과정에서 성공 가능성이 낮은 바이오 산업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무혐의를 주장했지만 결론적으로 삼성바이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 교수는 “지금이 아닌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 (회계처리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리제도를 개선해 기업과 감사인의 불안감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 교수는 “사후적발 위주 규제에서 사전 예방적 감독체제로 개편하고 주석공시 사항이 명백한 오류가 아닌 이상 감리 대상이나 기타 제재의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되며 공시되지 않은 항목이라도 재무제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명백하게 고의로 누락한 것이 아닌 이상 제재 수단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감리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일 가톨릭대 교수는 “감리제도 논란에서 원칙이 아닌 규정중심, 결과가 개인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풀어야 할 과제 같다”며 “원칙중심 기준 하에 불확실성, 회색지대가 있다가 어느 순간 사후적으로 가혹하다 느낄 경우 감리에 대한 불신이 쌓일 수 있다”고 밝혔다.
원칙중심 회계처리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감독당국 내 회계 관련 부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일관된 감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감독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기업들의 원칙중심 회계처리에 대한 전문성 제고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손영채 금융위 공정시장과 과정은 “사후적발 위주 규제 등에 대한 편견 우려를 감안해 더 좋은 감독지침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