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23일 ‘반도체 백혈병’과 관련해 공식 사과하며 11년 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최근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며 해결에 나서고 있는 해묵은 과제들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린 후 삼성은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고 협력업체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등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김기남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사과문을 발표하며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김 사장은 오는 2028년까지 피해 근로자에 대한 보상과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했다. 김 사장은 “소중한 동료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았는데 이를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 드리지 못했다”며 “그 아픔을 충분히 배려하고 조속하게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삼성전자는 과거 반도체 및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장에서 건강 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벽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합의안에 따라 근무장소, 근속기간, 질병 중증도 등을 고려해 산정하되 백혈병의 경우 최대 1억5,000만원을 보상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전자산업을 비롯한 산업재해 취약 노동자의 안전·건강 보호와 중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500억원 규모의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을 출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사장은 “삼성전자는 사회적 합의가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정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은 “서로 다른 입장과 가치에 대해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나가면서 화해를 위한 불씨를 키워나갈 때 우리는 치유에 이를 수 있다”며 “이번 조정과 중재절차가 바로 그것을 보여준 하나의 전형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가 ‘조정안 무조건 수용’에 동의했지만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시민단체 ‘반올림’ 측은 이날 보상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상기 대표는 “삼성전기·삼성SDS·삼성SDI 등 다른 계열사에서도 유해물질을 사용하다가 병든 노동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외협력업체 소속이라서 혹은 보상 대상 질환이 아니라서 보상에 포함되지 못한 분들이 계셔 안타깝다”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사업장에 있는 모든 직업병 노동자들을 위한 폭넓은 보상을 마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