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국민투표를 통해 2년만에 기존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기로 했다. 대만에서는 지난 8월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를 빚으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만, 독일 등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왔다. 대만이 친(親)원전 국가로 복귀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도 영향을 줄 지 주목된다.
25일 대만 중앙선거위원에 따르면 전날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된 국민투표에서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중단시킨다는 전기사업법의 관련 조항 폐지 여부에 대해 530만5,000개(전체 유권자 대비 29.84%)의 찬성표가 나와 통과됐다. 이에 따라 차이잉원 총통의 탈원전 정책도 2년만에 중단된다. 국민투표가 통과되면 대만 정부는 3개월 안에 그 결과를 반영한 법안을 입법원(국회)에 제출해야 하고, 입법원은 이를 심의해 통과시킬지를 결정하게 된다.
2016년 대선에서 “2025년까지 원전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던 차이 총통은 집권 후 전기사업법을 개정해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의 가동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조항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 시행으로 일부 원전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대만 내에서는 전력 수급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대만전력에 따르면 올해 4∼8월 여유 전력이 10% 이상인 상태를 의미하는 ‘녹색 신호’가 켜진 날은 13일밖에 안 된다. 수요가 공급에 육박할 때 켜지는 ‘황색 신호’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인위적 실수로 대만 전국 가구의 절반이 정전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시민운동가 황스슈 등의 주도로 탈원전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운동이 벌어졌으며, 법정 요건(28만1,745명)을 넘는 서명을 받아내 국민투표가 이뤄지게 됐다. 국민투표는 전체 유권자의 25%가 투표에 참가해야 유효하며,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을 경우 가결된다.
한편 이날 국민투표에서는 올림픽에 ‘차이니스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 이름으로 나가자는 조항은 부결됐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대만’(Taiwan) 이름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데 동의하느냐‘는 항목에 찬성한 이들은 476만여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25%인 493만명에 미치지 못했다.
중국을 뜻하는 ’차이니스‘라는 꼬리표를 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이번 투표는 대만인들에게 사실상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의지를 묻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다수의 대만인은 현상 유지 쪽을 택했다. 우선 차이 총통 집권 이후 지속해온 선명한 ’탈중국화‘ 정책에 따른 대만인들의 피로감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6년 독립 지향의 차이 총통이 취임하고 나서 중국은 외교·군사·경제적으로 대만을 압박하고 나섰고 양안 간 긴장이 크게 고조됐다. 연합보가 지난 9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7.6%가 차이잉원 정부의 양안관계 처리 방식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는데 이는 차이 총통의 집권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아울러 대만 유권자들이 올림픽 참가 명칭을 ’대만‘으로 바꾸면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권을 박탈당하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점을 걱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국제올림픽위원회(ICO)는 대만 올림픽위원회에 참가명칭을 변경하면 올림픽에 나갈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세 차례나 경고했다.
이에 대만 올림픽위원회는 최근 기자회견까지 열어 “감정적으로 투표하지 말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전날 국민투표에서는 민법상 혼인 주체를 남녀로 제한(민법상 동성결혼 금지 유지)해야 한다는 항목이 70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통과됐다. 민법 외에 다른 방식으로 동성 간의 공동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항목도 통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