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에서 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이 6대 직할시장 선거뿐만 아니라 주요 현·시장 선거에서도 약진하면서 집권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참패했다.
25일 대만 중앙선거위원회의 최종 당선자 발표에 따르면 국민당은 22개 현·시장 자리 중 3분의 2에 달하는 15곳을 차지했다. 반면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이끄는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은 6개의 현·시장 자리를 얻는 데 그쳤다. 특히 2014년 민진당 후보가 당선됐던 두 직할시인 가오슝(高雄)과 타이중(臺中)에서 국민당 후보가 파란을 연출하고 당선됨에 따라 민진당은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차이 총통은 전날 밤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면서 민진당 주석 자리에서 사퇴했다.
이같은 민진당의 참패는 집권 3년차를 맞는 차이잉원 정부가 탈원전 등 민심에 반한 정책을 추진하는 등 중대한 실책을 거듭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저혈압 환자’에 빗댈 정도로 만성적인 활력 부진에 빠진 대만 경제를 살리는 데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민심 이반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시진핑 중국 정부가 2016년 차이 총통의 집권 이후 독립 추구 성향을 드러내자 ‘무력통일’을 위협하자 대만 유권자들이 실익 없는 독립 추구보다는 안정 쪽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대만 국민투표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을 포함한 국제 스포츠 대회에 ‘차이니스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으로 참가하자는 안건은 476만여명의 동의를 얻는 데 그쳐 전체 유권자 1,970여만명 중 25%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해 부결됐다. 결과적으로는 유권자들이 양안 관계를 격랑으로 몰고 갈 ‘위험한 안건’에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대만 독립’을 강령으로 한 민진당 소속인 차이 총통은 집권 후 ‘하나의 중국’ 원칙에 모호한 입장을 견지하는 가운데 선명한 ‘탈중국화’ 정책을 폈다. 이에 맞서 중국은 경제·외교·군사 등 전방위적으로 차이 정부를 압박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 인근에서 수시로 무력시위성 군사 활동을 벌였고, 몇 되지 않는 대만 수교국들이 대만과 단교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은 대만이 올림픽 참가명을 변경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한 데 대해 ‘변형된 독립 기도’라고 규정했다. 대만이 독립을 선언할 경우 무력을 동원해 점령할 수 있다는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은 그동안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바탕으로 대만과 평화적인 통일을 추진한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해왔으나 차이 총통 집권 이후 ‘무력 통일’ 위협이 매우 노골화됐다.
웨이펑허(魏鳳和) 중국 국방부장이 지난 9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외교안보 대화를 마치고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분열되면 미국이 남북전쟁 때 그랬듯이 모든 대가를 감수하고서라도 조국 통일을 수호할 것”이라며 초강경 입장을 천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도 대만으로 향하는 본토 관광객 숫자를 줄이는 등 경제 교류 규모를 줄이면서 대만 경제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
동시에 중국은 ‘양안은 한 가족’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만인들을 차이 정부와 분리하는 공작을 펼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중국이 민진당 패배를 유도하기 위해 적극적인 ‘여론 공작’에 나선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민진당은 중국이 인터넷에서 대만 정부와 자기 당 후보들을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글들을 조직적으로 유포하면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의혹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적대 관계에 있거나 분쟁 중인 상대방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해 자국에 유리한 정책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 전략이다. 중국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후 단체 관광객 송출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한국에 노골적인 정책 변화 압력을 가했다. 무역전쟁 중인 미국을 향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러스트 벨트’(Rust Belt)와 ‘팜 벨트’(Farm Belt)를 집중적으로 겨냥한 고율 관세 목록을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