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노동정책, 첫 단추부터 다시 끼워라] 김밥 마는 기계·사라진 주차관리인…길거리로 내몰리는 취약층

<상> '최저임금 과속' 경고등-커지는 부작용

인건비 증가 부담에 소형 음식점까지 자동주문기기

편의점 심야영업 줄고 골프장선 그늘집 폐쇄 급증

23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손님들이 자동화기기로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권욱기자23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손님들이 자동화기기로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권욱기자



편의점 CU 가맹점주들은 지난 23일부터 매일 CU의 가맹본사인 BGF리테일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가맹본사에 내년 최저임금 10.9% 인상에 따른 추가 인건비 부담을 5대5로 분담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생협약을 새로 체결하자고 촉구하기 위해서다.

BGF리테일 가맹본부와 CU 가맹점주협의회는 심야전기료와 간판세척비 지원 등을 주 내용으로 한 상생협약을 지난해 12월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가맹점주협의회 측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반씩 나누는 내용이 들어간 새 상생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를 가맹본부가 거부하면서 양측의 상생협약은 결렬됐다가 최근 간신히 재개된 상태다. 최저임금이 편의점주들과 가맹본부의 상생 움직임에도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올해 16.4% 오른 데 이어 내년에도 10.9% 상승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2년 사이 29% 오르게 되면서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와 가맹본사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는 한편 소매 업종에서는 무인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골프장 그늘집도 문을 닫는 경우가 늘었고 중소기업계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채용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우려할 점은 최저임금 인상이 역설적이게도 최저임금 계층의 일자리를 가장 먼저 없애고 있다는 점이다.



◇무인주문 일반화…김밥 마는 기계까지=25일 서울역의 한 분식집. 이곳은 아주 바쁜 시간대만 제외하면 점원 한 사람이 주방과 손님 응대까지 모두 다 하고 있다. 주문받는 일과 결제를 무인주문기(키오스크)가 하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 업계에서는 키오스크가 어느새 대세가 됐다. 맥도날드·롯데리아 등 대형 업체들이 먼저 시작해 고객들이 기계 주문에 익숙해지자 명동할머니국수 등 분식집들이 기계를 도입했고 이어 순대국집 등 소형 업체들에서도 사람 대신 기계를 놓는 일이 늘어났다. 현재 롯데리아의 경우 전체 매장의 반이 넘는 825곳에서 무인계산대 1,201대를 운영하고 있다. 전 매장이 직영점인 KFC는 올해 안에 전체 201개 점포에 키오스크를 설치하기로 했다. 버거킹 역시 연내에 직영매장을 대상으로 키오스크 도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키오스크 렌트비가 같은 양의 일을 하는 알바생에게 주는 인건비의 10% 수준에 불과해 인건비 절감 측면에서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무인화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신규 창업자들이 키오스크를 ‘기본 세팅’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도시락카페 개업을 준비하고 있는 신상태(가명)씨는 아예 키오스크 시스템을 도입한 프랜차이즈만을 골라 사업설명회를 들었다. 신씨는 “먼저 창업한 사람들로부터 최저임금 때문에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점원을 한 명이라도 덜 고용하려면 기계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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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과 결제뿐 아니라 소형 외식 사업장의 조리 분야에도 기계가 도입되고 있다. 분식 프랜차이즈 얌샘김밥은 김밥 마는 기계와 채소 채 써는 기계를 선보였다. 본죽은 죽 젓는 기계를 개발해 일부 매장에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골프장 그늘집도 문 닫는 중=최저임금은 밤거리의 풍경을 바꾸고 있기도 하다. 과거에는 편의점 하면 24시간 영업이 기본이라 심야 시간에도 편의점만은 불이 켜져 있었지만 최근에는 불 꺼진 편의점이 늘고 있다. 심야 근무자에게 주는 수당 등 비용에 비해 수익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마트24는 출점 계약 시 심야 영업 여부를 점주가 선택할 수 있는데 올해 신규 점포 중 24시간 운영 계약을 맺은 점포는 상반기 9.7%에서 3·4분기 7.4%로 2.3%포인트 감소했다.

주차장도 무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주상복합 상가는 용역업체를 통해 주차장을 관리하다 올해 9월 이를 무인화했다. 이곳에서 5년째 요식업체를 운영하는 김진용(가명) 사장은 “주차장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도 결국 입주업체들이 일정 부분 분담해야 하는 구조여서 입주자 토의 끝에 무인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상가 소아과에서 만난 양지은(가명)씨는 “무인 시스템 도입 초반에는 방문 업장에 차 번호를 알려주고 무료 주차 등록을 하는 것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적응이 돼서 편하다”고 말했다.

골프장 업계에서는 코스 내 간이식당인 그늘집을 폐쇄하는 곳이 급증했다. 그늘집 운영을 2곳에서 1곳으로 줄이거나 간단한 간식거리만 무인판매로 대체하는 모습이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의 한 관계자는 “장시간 근무가 많은 골프장 업무 특성상 최저임금 인상은 경영을 더욱 악화하고 고객 만족도를 저하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소기업들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외국인조차 고용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날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외국인 신청률은 2017년 229.3%에서 140.2%로 대폭 하락했다. 중기중앙회가 2017년 외국인 신청업체 중 2018년에는 신청하지 않은 중소 제조업체 577개사를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은 결과 ‘인건비 부담(38.3%)’과 ‘경영 악화(24.1%)’ 순으로 답했다. 이들은 내·외국인을 포함한 내년 고용 계획에 대한 질문에 40.4%만이 충원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이재원 중기중앙회 고용지원본부장은 “지난해까지는 내국인 근로자를 구하기 힘든 중소 제조업체에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높았지만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인건비 부담 및 경영환경 악화로 업체의 고용 자체가 위축됐다”며 “향후 경영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수민·박준호·박민영기자 noenemy@sedaily.com

맹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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