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고유의 세시풍속놀이 씨름이 사상 첫 남북 공동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이하 무형유산위원회)는 26일 아프리카 모리셔스 수도 포트루이스에서 개막한 제13차 회의에서 남북이 각각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신청한 씨름을 하나로 묶어 공동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심사는 28일부터로 예정됐으나 무형유산위원회는 씨름이 갖는 사안의 상징성을 고려해 이례적으로 개회일인 이날 오전에 우선적으로 씨름 공동 등재 안건을 상정했고, 24개 위원국 만장일치로 등재를 결정했다. 18개국이 공동 등재 한 ‘매 사냥’, 4개국의 ‘줄다리기’ 등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등재한 인류무형문화유산이 있지만 씨름처럼 분단국가인 남한과 북한의 문화유산이 공동 등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남북한의 민족사적 동질성 확인의 차원에서도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무형유산위원회는 두 종목이 사실상 동일하다고 판단하고, 남북의 의지와 국제사회 협력을 인정해 공동 등재 결정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정식 등재 명칭은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이다. 위원회 측은 “남북 씨름이 연행과 전승 양상,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의미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평가기구가 남북 씨름을 모두 등재 권고한 점을 고려해 전례에 없던 개별 신청 유산의 공동 등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우리나라는 유네스코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인 씨름을 ‘대한민국의 씨름(전통 레슬링)’(Ssireum, traditional wrestling in the Republic of Korea)으로,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씨름(한국식 레슬링)’(Ssirum(Korean wrestling)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라는 명칭으로 각각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씨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동등재는 지난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쪽에서 먼저 공동등재를 제안하고 북측이 이에 호응하면서 성사됐다. 지난달 16일에는 프랑스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아줄레 사무총장을 만나 씨름의 공동등재를 논의했고, 실제 이달 15~17일에는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특사가 방북해 북한을 설득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대한민국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포함해 판소리, 강강술래, 아리랑, 김장 문화, 제주 해녀 문화 등 총 20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확보했다. 북한은 지난 2013년에 아리랑, 2014년에 김치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올렸다. 두 종목 모두 한국보다 2년씩 늦게 올렸고 이번에 씨름을 추가해 총 3종목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등재했다. 이번에 씨름을 남북 공동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남북의 문화교류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남북한 모두 각자 등재한 ‘아리랑’을 남북 공동등재로 전환하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같다”면서도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형유산이 아닌 세계유산은 유산의 장소성이 중요하고 등재 절차가 까다로운 편이다. 그럼에도 공동 등재를 추진한다면 남북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가 1순위로 꼽힌다. 4㎞ 폭의 비무장지대는 한국전쟁 이후로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자연유산으로의 가치가 높고 궁예가 강원도 철원에 세운 태봉국 철원성, 냉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각종 군사시설이 존재해 문화유산으로서 성격도 갖췄다. 2009년 세계 문화유산이 된 ‘조선왕릉’도 남한의 무덤 40기만 세계유산에 등재됐는데 북한 개성에 있는 무덤 2기를 포함해 등재하는 것도 검토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