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설마 했고 나중에는 ‘왜 하필 나야’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인정하기 싫었어요.”
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지선(59·가명)씨는 은행원이었다. 20여년 전 발병한 암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했지만 다행히 항암치료가 잘 됐다. 그 후 활발하게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 사업을 진행했다. 치매는 달랐다. 2년 전 치매 판정을 받은 후 사업은커녕 간단한 요리도 힘들어졌다.
그나마 김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병세를 초기에 발견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아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65세 이전에 나타나는 초로기 치매의 경우 뇌세포의 손상 속도가 노년기 치매에 비해 두 배 이상 빠르다. 강선옥 강서치매안심센터 팀장은 “치료 시기를 놓치고 2년 만에 말기까지 급속도로 진행된 초로기 치매 환자가 매우 많다”고 설명했다.
“노인정에서 그럽디다. 자식이 부모 치매 걸린 것 알면 양로원부터 찾으니까 버려지기 싫으면 절대 자식 앞에서 치매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요.” 김씨의 남편 박준규(59·가명)씨는 치매 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 때문에 치매 조기발견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치매 환자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환자들이 발병 사실을 숨기거나 ‘커밍아웃(공개)’하기를 주저한다는 뜻이다. 박씨는 “모든 병의 치료는 그 병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며 “치매를 가볍게 봐선 안 되지만 언론 등 미디어가 이 질환을 너무 두렵게 묘사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부담스러운 약값과 보험료도 환자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김씨는 강서치매안심센터장인 정지향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의 도움으로 신약 임상시험에 참가할 수 있었지만 대다수의 노인에게 이는 꿈만 같은 이야기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약값은 최대 월 3만원에 그치고 있다. 비싼 약값에 비하면 조족지혈 수준이다. 보험사들도 치매 환자를 꺼린다. 환자들은 여행자보험 등 간단한 상해보험조차 가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최장 6개월에 불과한 치매안심센터의 돌봄지원 기간을 놓고도 아쉬움이 많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데리고 경기 안산시 단원치매안심센터를 찾은 양점례(78·가명)씨는 “겨우 남편을 설득해 이제야 재미있게 다니고 있는데 기간 연장이 안 된다고 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현숙 단원치매안심센터 팀장은 “잦은 환경변화는 병세를 악화시키는 만큼 원하는 사람들에 한해 프로그램을 연장할 수 있게 해달라고 보건복지부에 건의하지만 쉽지 않다”고 밝혔다.
부담은 가족들의 몫이다. 박씨는 오늘도 아내의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한다. 그럼에도 박씨는 치매 환자들이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꾼다. “일본에서는 노인끼리 그룹을 만들어 치매 환자까지 한 지역에서 보듬고 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날이 올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