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평생 죄인처럼 살았는데… 이제야 恨 풀어"

■대법 "미쓰비시重도 징용피해 배상"

근로정신대·강제징용 피해자·유족 등

8,000만~1.5억원 배상 원심 확정

日외상 "결코 수용못해" 강력 반발

29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가족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만세를 외치고 있다. /송은석기자29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가족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만세를 외치고 있다. /송은석기자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이어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도 일제강점기 강제노역으로 피해를 본 할아버지·할머니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판결”이라고 강력 반발해 한일 관계 경색이 더 심해질 수 있음을 예고했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29일 양금덕(89) 할머니 등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피해자에게 1억~1억5,000만원씩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일본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사건으로는 국내 첫 확정 판결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은 강제징용과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제소를 당한 기업이기도 하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박상옥)는 또 정창희(95) 할아버지 등 6명의 강제징용 피해자·유족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도 8,000만원씩 미쓰비시중공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본 정부의 불법 식민지배·침략전쟁과 직결된 위자료청구권은 1965년 한일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낸 결론을 따른 판단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2부(김한성 부장판사)도 강제징용 피해자 김모씨의 유족 3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유족에게 배상금 1억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양 할머니 등은 지난 1944년 “일본에 가면 공부도 가르쳐 주고 상급학교에도 갈 수 있다”는 일본인 교장과 담임선생의 회유에 속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돼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중노동에 시달렸다. 이들은 1999년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를 확정받았다. 이에 2012년 국내 법원에 다시 소송을 냈고 1·2심은 모두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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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건은 2015년 대법원에 올라온 뒤 3년 넘게 계류됐다. 특히 최근 양승태 사법부가 대일관계 악화를 우려한 박근혜 정부를 의식한 듯한 문건이 발견되면서 사건은 재판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피해자 중 한 명인 김성주(89) 할머니는 이날 서울변호사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남편한테도 위안부였는데 거짓말을 한다고 많이 맞았고 지금도 노인정에서 위안부라고 오해받는다”며 “집에도 보내주지 않고 도난카이 대지진 때 죽고 다치는 등 일본은 우리가 한 고생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 할아버지 등도 1944년 강제징용돼 미쓰비시중공업 기계제작소와 조선소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중노동을 했다. 이들은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각종 장애까지 겪으며 귀국한 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1·2심은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원고 패소로 결정했지만 2012년 대법원은 피해자들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봤다. 다시 치러진 2심은 대법원 취지에 따라 미쓰비시중공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에 남긴 재산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 실제 배상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니콘프레시젼코리아·니콘이미징코리아·미쓰비시다나베파마코리아 등의 미쓰비시그룹 계열사가 국내에 진출했으나 이들의 재산과 미쓰비시중공업과의 관련성은 확인된 바 없다. 근로정신대 사건을 대리한 이상갑 변호사도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재산은 아직 파악된 게 없으며 관련 제보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앞으로도 피해자들의 승소가 잇따르면서 한일 간 긴장관계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날 담화를 통해 “이번 판결은 한일청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하고 일본 기업에 부당한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며 “한국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즉각 시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은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이번 판결에 대해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경환·박홍용·조권형기자 ykh22@sedaily.com

윤경환·조권형·박홍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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