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CEO&STORY] 김윤수 애플라인드 대표 "나이키·미즈노처럼...레전드 스포츠 브랜드로 키울것"

해외 값싼 인력 필요한 'OEM' 대신

고부가 독자 브랜드 2007년에 선봬

100억이상 들여 원주복합센터 건설

해외 생산보다 3배 빠른 완성품 OK

세계 톱2 빙상 브랜드 '메이플' 인수

사업영역 확장 등 경쟁력 업그레이드

글로벌 브랜드 도약 '힘찬 날갯짓'

김윤수 애플라인드 대표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위원들이 입었던 패딩 재킷을 입고 메이플 스케이트 날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의 옆으로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낸 헝가리 국가대표팀이 입은 것과 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이 걸려 있다./ 원주=이호재기자김윤수 애플라인드 대표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위원들이 입었던 패딩 재킷을 입고 메이플 스케이트 날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의 옆으로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낸 헝가리 국가대표팀이 입은 것과 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이 걸려 있다./ 원주=이호재기자



“1986년에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수출을 시작하면서 ‘영원한 을’로 지내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를 깨달았죠. 우리 회사만의,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스포츠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100년이 넘어도 건재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사에 남을 스포츠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인들과 함께 즐기고 싶다는 ‘희망’이 곧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하는 김윤수(59·사진) 애플라인드 대표의 눈은 자신감으로 빛났다. 3일 강원도 원주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김 대표는 반백의 머리가 무색할 정도로 탄탄하고 다부진 체격을 갖고 있었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일본 브랜드를 제치고 국제빙상연맹(ISU) 위원들이 선택했다는 패딩 재킷을 걸친 그는 영락없는 스포츠 선수의 풍채를 자랑했다. 공정한 규칙에 따라 그간 흘린 땀에 비례해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스포츠 정신은 김 대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밑바탕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무역회사에서 5년간 일하면서 섬유 제작 공정이나 유통에 대한 지식을 쌓았습니다. 전공은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그 경험이 바탕이 돼 미전교역을 설립했죠. 일본이나 미국의 유명한 의류 브랜드에 기능성 의류를 수출해 그 공로로 ‘무역의 날’에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닥치며 주 거래처였던 일본 회사가 갑작스럽게 부도나면서 그의 회사도 무너졌다. 값싼 노동시장을 활용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중국 공장이 IMF의 파고를 견디지 못하고 멈춰 섰기 때문이다. 멈춰선 공장,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고, 그보다 더 켜켜이 쌓인 빚. 가족과 함께 살 집조차 지키지 못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다부지게 마음을 먹은 그는 아프리카 케냐에까지 공장을 세우며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OEM은 한계가 확실했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헤매는 것도 결국 남 좋은 일이라는 생각만 확고해졌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을 한시도 놓은 적이 없습니다. 112년 된 미즈노, 94년 된 아디다스, 46년 된 나이키 같은 스포츠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김 대표는 고집스럽지만 우직하게 ‘메이드 인 코리아’를 위한 첫발을 내디딜 각오를 다졌다. 시작은 기존의 편견을 깨뜨리는 생산 기반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는 “의류 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하나같이 저임금 국가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런 방식으로 실패를 경험했던 만큼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면서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의류 제조 기반이 공동화됐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당시 기술자들이 연기처럼 사라진 게 아니라 소수의 공룡이 6,000여개의 작은 개미로 조각조각 분산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애플라인드만의 연합생산 시스템의 토대가 됐다. 의정부와 동두천·성남·부천 등 수도권 곳곳에 모래알처럼 퍼져 있는 의류·섬유 관련 소규모 공장들을 유기적으로 묶어 하나의 공장처럼 운영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연합생산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현해내기 위해 2016년 9월 원주 기업도시 10만804㎡ 부지에 ‘애플라인드 원주복합센터’를 세웠다. 총 110억원이 들어간 대규모 사업이었다. 이곳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만든 의류들을 검수하는 것은 물론 최고급 라인의 자체생산도 가능하다. 의류 신제품 샘플은 대개 10일에서 14일까지 걸리지만 애플라인드에서는 이 연합생산 시스템을 통해 사흘이면 해결된다. 해외 생산보다 3배 이상 빠른 속도로 완성품을 선보일 수 있기 때문에 빠른 트렌드에 발맞춘 소량 다품종 생산이 가능하다. 김 대표는 센터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에게 미싱사나 봉제사 같은 예전의 명칭 대신 각각 SD(Sewing Designer), SM(Sewing Master) 등 새로운 호칭도 부여했다. 최소 15년 이상 의류 생산 전문가로 한 길을 걸어온 직원들이 제대로 대접받고 일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 최고급의 제품을 선보이려는 작은 노력이었다.

김윤수(왼쪽) 애플라인드 대표가 원주 복합센터 4층에서 임병숙(가운데) 전무, 핵심 기술자인 태인명 실장과 신제품의 방향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올해 72세인 태 실장은 의류 생산 52년 경력의 장인이다. 애플라인드는 기술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년 없는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원주=이호재기자김윤수(왼쪽) 애플라인드 대표가 원주 복합센터 4층에서 임병숙(가운데) 전무, 핵심 기술자인 태인명 실장과 신제품의 방향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올해 72세인 태 실장은 의류 생산 52년 경력의 장인이다. 애플라인드는 기술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년 없는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원주=이호재기자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도 김 대표가 부단히 공들이는 일이다. ‘애플스킨’ ‘스킨온스킨’ 등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이름에 안착한 애플라인드는 ‘사과껍질’이라는 의미로 ‘몸에 밀착되는 기능성 스포츠 의류’를 가리킨다. 그는 “사과는 껍질을 깎아두면 곧바로 갈변하고 과육이 상하기 마련”이라며 “우리 몸을 예쁘고 맛있는 사과로 비유하면 몸을 다치지 않고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껍질 같은 옷이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김 대표는 2007년 서울 광장동 오피스텔 15평짜리에서 임병숙 전무와 함께 공장 겸 사무실을 차리고 애플라인드 로고가 새겨진 웜메이트 기능성 내의 2만벌을 만들어 서울 경기권의 골프연습장을 공략했던 때를 회상했다. 옷의 품질을 믿었기에 한번 입어본 이들이 다시 찾아주고, 또 주변에 알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김 대표의 생각은 옳았다. 그해 겨울 백화점과 대형마트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능성 스포츠 의류를 개발하게 됐다. 전국 코스트코에서 무인 판매되는 애플라인드 제품은 기능성 이너웨어 부분에서 2010년부터 꾸준히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품질로 승부하는 홈쇼핑 시장에서도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애플라인드는 2015년 11월 현대홈쇼핑에서는 방송 개시 50분 만에 준비한 물량의 97%(총 13억원어치)를 판매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올해도 지난 11월 현대홈쇼핑에서 기능성 겨울 내의인 ‘웜메이트 목폴라’ 3장과 스리(3)레이어 재킷 1장, 총 4종이 한 세트로 묶인 윈터 패키지가 50분 만에 6,000세트까지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애플라인드를 입은 선수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최근 니혼햄 레이디스 클래식 우승을 추가하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한국인 최다 우승의 기록을 세운 안선주 선수가 경기 때마다 꼭 찾아 입는 옷도 다름 아닌 애플라인드 제품이다. 헝가리 국가대표팀이 지난해 1월 기존 네덜란드 유니폼을 버리고 애플라인드 유니폼으로 교체한 후 평창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남자 계주 신기록을 세우고 첫 금메달을 따냈던 뉴스도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이 밖에도 골프의 이민영, 노무라 하루 선수를 비롯해 양궁의 기보배, 오진혁, 빙상의 김민석 선수 등도 애플라인드 의류를 애용하고 있다.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김 대표는 올해 8월 세계 2대 스케이트 블레이드 브랜드인 네덜란드의 ‘메이플’을 인수하는 데 성공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에서 원주로 옮겨온 메이플은 애플라인드의 탁월한 생산력에다 서울대의 기술연구를 더해 시장 점유율을 키워나간다는 목표다.

“메이플 인수는 중국 시장 진출에 좋은 발판이 되고 있습니다. 2022년 동계올림픽 앞둔 중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빙상 인구는 5,000만명, 빙상 규격 경기장만도 650개라고 합니다. 그 시장의 0.1%만 잡는다고 해도 메이플의 미래는 아주 밝아요. 스케이트 날을 사면 옷도, 부츠도 같은 브랜드로 편입되는 구조기에 앞으로 독보적으로 좋은 제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김 대표는 중국의 국영기업이자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총괄하는 화추이(화체)기업을 통해 중국 국가대표 선수단의 빙상복과 스케이트 샘플 주문도 이미 따낸 상태라며 국내 판매만으로 연간 150억원 매출을 내고 있는 애플라인드를 글로벌 시장에 알릴 준비를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 미국·유럽·중국·일본 등 20여개 국가로 수출이 본격화되면 애플라인드 매출은 2배 이상 껑충 뛸 것으로 기대된다.
/원주=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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