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가 정부의 대책 발표에도 사그라질 기미가 없다. 프랑스 정부가 기존 입장에서 후퇴한 유류세 인상 6개월 유예 방안을 꺼내들었지만, 시위대는 정부의 조치가 “너무 늦었다”고 지적하며 이번 주말에도 시위를 이어갈 방침이다.
4일(현지시간) AP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벌어진 최악의 대규모 시위 사태에 굴복하고 애초 내년 1월 시행예정이었던 유류세 인상 조치를 6개월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이날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담화를 통해 “나라의 단합을 위험에 빠트리면서까지 부과해야 할 세금은 없다”며 저소득 노동자층과 생활고를 면치 못하고 있는 중산층을 위한 조치를 찾아보겠다고 전했다. 내년 5월까지 천연가스와 전기요금도 동결하겠다고 밝혔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기대와 달리 언급이 없었다.
필리프 총리는 3주 전만 하더라도 화석연료 사용 축소를 위한 조세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구급대원들과 학생 등 세대와 이념을 넘어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하고 폭력도 점차 거칠어지자 정부로서 일보 후퇴한 것이다.
지난 주말 파리에서 격화된 시위로 인해 130명 이상이 다치고 412명이 체포됐다. 샹젤리제 주변의 상점은 약탈당하고 차량은 불태워졌으며 개선문에는 낙서가 새겨지고 훼손됐다. 프랑스의 100여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했고, 마르세유의 한 고등학교 앞에서는 학생들과 경찰의 충돌까지 일어났다. 프랑스 관리들에 따르면 이번 시위로 현재까지 모두 4명이 사망했다.
마크롱 대통령 취임 18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존과 정반대 입장의 총리 담화를 냈지만 시위대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노란 조끼’ 시위대의 대변인 격인 벤자맹 코시는 “프랑스인들은 과자 부스러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빵을 원한다”면서 기존 유류세 인상분의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시위대 지도자를 자처하는 티에리 파울로 발레트도 시위대는 유류세뿐만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에 불만이라며 “너무 늦었다. 나는 이 정부가 물러나길 요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도우파 정당인 공화당의 다미앵 아바드 의원도 “너무 알맹이가 없고, 너무 늦었다”며 필리프 총리가 유류세 인상 보류만을 언급한 것은 언급한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으로 정부 노선의 변화가 필요하다 말했다. 시위대는 경기 침체 문제와 함께 사회적 불평등, 유럽 내 최고 수준인 납세 제도, 심지어 현 정부의 퇴진 요구까지 여러 불만을 토해 내고 있다.
들끓는 여론에 반하여, 취임 후 최대 위기에 몰린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주말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돌아온 뒤 공개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5일로 예정된 이틀간의 세르비아 방문을 취소한 채 지난 3일 필리프 총리를 만났고, 필리프 총리는 이에 앞서 주요 정당 대표자들과 만나 의견을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발표에도 이번 주말 시위는 계속 진행이 된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쏟아지면서 이번 ‘노란 조끼’ 시위가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시위는 소셜미디어상에서 출발했으나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현재는 극우와 극좌 등 이념을 초월해 모든 세대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또 전 투자은행가 출신인 마크롱이 부자만을 챙기고 빈곤층을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불만도 쏟아지면서 갈수록 반(反)마크롱 세력이 집결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beatri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