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피해 추산 힘들고 분쟁 뻔한데...통신재난 보상체계 세워야

■해법찾기 어려운 KT화재 간접피해 보상

경제 마비에도 배상기준 없고

당국도 "KT가 알아서 할 일"

피해자 개별 줄다리기 불가피

5G시대 간접피해 눈덩이 우려

주파수 경매 수입 일부 적립 등

정부 가이드라인 마련 서둘러야




지난달 발생한 KT 아현지사의 지하통신선로(통신구) 화재는 통신재난 예방 뿐 아니라 사후 배상시스템의 부재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정부가 사후 대응책이 마련에 나섰지만 통신재난에 대한 체계적 손해배상시스템 구축방안은 현재 거론조차 되고 있지 않다.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관계자들은 “배상 문제는 KT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반응을 보일 뿐이다. 불의의 통신대란 재발에 대비해 사후 손해조사와 배상범위 등에 대한 표준절차를 마련하고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제적 피해규모를 추산해 그에 대응할 배상재원 충당시스템을 고민해야 하지만 현재로선 어느 부처나 기관도 해당 문제를 공식적으로 이슈화하지 않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통신 장애 ‘간접피해’=그간 통신장애 발생시 피해배상은 주로 직접피해(소비자의 통신이용 불편 등)에 대해 통신요금을 감면해주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이용자의 영업손실 등 간접피해에 대해선 통신사가 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도 간접피해 문제는 통신사와 서비스 이용자간 사적 배상협상의 문제라며 한 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통신마비 사태시 초래될 간접피해가 직접피해보다 더 부각될 수 있어 관계 당국이나 통신사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기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 중견 정보기술(IT)기업 임원은 “아직 까지는 통신서비스가 이용자의 본업이나 생활을 간접적으로 보조하는 수준의 단순 전화통화나 데이터전송에 그치고 있지만 앞으로 5G(5세대 이동통신서비스)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돼 자율주행차나 스마트공장, 스마트농장, 핀테크, 원격의료 등에 적용된다면 통신서비스 자체가 이용자의 본업이나 일상활동에 직결되는 핵심 수단이 된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렇게 되면 통신 에러로 인한 고객의 간접피해가 직접 피해를 넘어서서 매우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보통신기술(ICT)업계의 관계자들도 비슷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한 대형 ICT기업의 임원은 “통신서비스와 정보기술이 점점 더 우리 사회 곳곳의 요소 기술로 작용하게 될수록 관련 서비스 장애에 따른 배상책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며 “자칫하면 대형 통신사가 예상치 못한 서비스 장애 피해를 배상하다가 문 닫게 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개별기업의 자율적 배상에만 맡겨 놓았다간 피해 고객들은 그들대로 제대로 보상을 못 받고, 기업은 기업대로 경영위기를 겪어 관련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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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분쟁조정에만 맡겨선 안돼=따라서 통신장애 사후 배상 문제에 대해 정부가 팔짱 끼고 제 3자 처럼 보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가이드라인과 배상 체계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만일에 대비한 통신재난 배상의 재원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1차적으로는 통신사들이 평소 특별회계처리를 통해 대규모 통신서비스 마비에 대비한 피배배상 재원을 충당금으로 충분히 쌓아놓을 필요가 있다. 손진열 한빛손해사정법인 대표손해사정사는 “과거 한전의 전력대란 당시에 저희가 일일이 피해조사를 해보니 배상 신청 사례가 전국에서 만건이 넘었을 정도였다”며 “그래도 당시엔 한전이 자체적으로 충당해온 재원으로 보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업 자율에 맡길 경우 충당금 적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어 정부 당국이 적정 충당금 비율을 마련해 준수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보아야 한다.

개별 기업의 충당금만으로도 감당이 안되는 대규모 통신재난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선 공적 재원과 사적 재원을 통해 사회적 기금이나 보험체계를 마련하는 것으로 검토해볼 필요도 있다. 현재 정부는 통신사에게 다양한 명목으로 각종 부담금(준조세) 등을 부과하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통신주파수 할당시 최고가입찰을 유도하기 위해 경쟁입찰방식을 도입하고 있는 데 관련 부담금과 주파수경매 수입으로 얻은 재원중 일부를 통신재난에 대비한 정부의 특별회계나 기금계정으로 적립하는 방안이다. 혹은 해당 정부 재원에 더해 통신사와 주요 인터넷서비스 기업 등이 보험료 형태로 갹출해 일종의 공제보험형태로 재난 배상금융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입법을 통해 통신재난공제보험의 근거조항도 만들어줘야 한다. 여기에 더해 선박보험 등처럼 통신재난공제보험을 뒷받침해줄 ‘재보험’시스템까지 구축한다면 리스크 분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양희산 한국보험정책연구원장도 “이번 KT 화재와 같은 재해사태와 관련해선 교육시설재난공제나 어린이집안전공제 제도 같은 것을 성공적인 선례로 참고해볼 만하다”고 제언했다. 이밖에도 통신분쟁 백서를 만들고 통신소비자 피해를 전담할 통신소보원을 만들거나 최소한 소비자보호원에 통신분쟁조정센터를 구축하는 방안도 정부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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