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의 지나친 판결 재량=윤해성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벌금형 기준이 없다”며 “징역형은 그래도 양형기준이 있지만 벌금형은 양형기준도 없다”고 말했다. 양형기준이란 판사들이 판결을 내릴 때 참고하라고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범죄별로 징역형 기본 형기, 감경, 가중 형기 등을 명시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동기의 살인(보통 동기 살인)의 경우 기본은 징역 10~16년, 감경(낮춰줄 요인이 있는 경우)은 7~12년, 가중은 15년 이상, 무기 이상이다. 하지만 선거법을 제외하면 양형기준을 두고 있는 것은 모두 징역형뿐이다. 공직선거법상 벌금 100만원 이상이면 당선 무효이기 때문에 선거법 양형기준에는 벌금형이 있다.
윤 연구위원은 또한 “법률상 감경 규정과 작량감경 조항이 있어서 벌금형이 더 왔다 갔다 한다”고 말했다. 현재 형법 55조에는 ‘법률상 감경’ 조항이 있다. ‘사형을 감경할 때는 무기 또는 20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로, 벌금을 감경할 때는 그 다액의 2분의1로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판사가 이렇게 형을 줄여줄 수 있다는 조항이다. 여기에 더해 형법 53조에는 ‘작량감경’ 조항이 더 있다. 단어도 어려운 작량감경이란 법조문대로 보면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작량하여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즉 판사가 정상을 참작해 형을 줄여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조항은 지난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있던 것으로 일본 형법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윤 연구위원은 작량감경에 따라 특히 경제 범죄의 경우 벌금형이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산업 스파이 문제 등도 검찰에서 피해금액을 수십, 수백 억원이라고 주장해도 법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옛 법 그대로. 물가 상승 반영 안 해=벌금형이 낮은 또 다른 이유는 오래전에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해놓고 고치지 않은 경우다. 그러다 보니 물가 상승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 형법 및 형사 관련법이 대표적인 경우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7조(우범자)에는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제공 또는 알선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1990년 12월31일 개정된 내용이다. 그런데 28년이 지난 지금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이다. 그동안 금은 4.8배 올랐고 소비자 물가지수만 봐도 2.5배 올랐다.
형법도 문제다. 지금도 상당수 벌칙조항이 1995년 개정된 내용 그대로다. 267조 ‘과실치사’는 2년 이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이다. 347조 ‘사기’, 350조 ‘공갈’은 10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그 사이 23년 동안 금은 4.6배, 시중 노임단가는 3.9배, 소비자 물가지수는 1.9배 올랐다. 시중 노임단가 상승률 3.9배를 기준으로 보면 1995년 700만원은 현재 2,730만원이다. 2,000만원은 7,800만원. 이처럼 시중 노임단가는 4배 가까이 뛰었음에도 형법의 상당수 벌칙조항은 1995년 그대로다. /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