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국회의원 세비




1990년 12월 역사적인 소련 방문을 앞둔 노태우 대통령이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대표최고위원과 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을 청와대로 불렀다. 소련 방문 기간 중 예산안 처리 등 국회를 원활히 이끌어달라는 주문과 함께 의원 세비의 과도한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주문이 뒤따랐다. 여야가 새해 세비를 무려 29.4% 인상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여론이 들썩이자 청와대가 제동을 건 것이다. 대통령이 국회의원 보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그만큼 놀고먹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셌던 것이다. 당청 회동 후 결국 의원회관 운영비 인상 폭을 삭감하는 선에서 세비 인상 논란을 매듭지었다.


세비는 ‘국회의원의 직무활동과 품위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비를 보전하기 위한 수당’을 의미한다. 하지만 의원의 보수를 통칭하는 세비라는 말 자체는 공식적인 법률 용어가 아니다. 현행 법률 어디에도 세비라는 표현은 없다. 다만 일본어에도 같은 의미로 쓰이는 세비가 있는 것을 본다면 일본 법을 따와 관행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비 지급의 근거 법인 현행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은 제헌 의회 시절 제정된 ‘국회의원보수에 관한 법률’이 모태로 1972년 유신헌법 선포 이듬해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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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세비는 기본급에 해당하는 일반수당과 회의참석비 또는 거마비가 전부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명목의 수당과 활동비가 다닥다닥 붙었다. 일반수당 외에도 관리업무수당부터 급식비와 정근수당·명절휴가비까지 별의별 수당이 다 있다. 여기에다 입법활동비와 특별활동비도 있다. 사무실 운영비와 차량 유지비는 세비와 별개로 의원실 경비로 받는다. 이런 쌈짓돈까지 합하면 의원 연봉이 1억5,000만원을 넘는다.

내년도 세비 1.8% 인상을 두고 여론의 역풍이 거세다. 청와대 국민청원 코너에서는 인상 반대와 반납을 요구하는 인원이 16만명을 넘었다. 인상 폭은 사실 큰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두 자릿수 인상도 예사였다. 그럼에도 국민 분노가 들끓는 것은 정치권이 민생법안을 비롯한 국민들의 생계는 내팽개친 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만 골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론의 도마에 오른 정치권에서는 인상분 반납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반납이 아니라 삭감을 해도 시원찮다. 일만 잘한다면 세비가 뭐가 그리 아까울까만 밥값조차 못 하니 하는 말이다. /권구찬 논설위원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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