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오는 2010년 영화 ‘아저씨’의 종석 역으로 악역의 진수를 보여줬다. 더이상 이를 뛰어넘는 캐릭터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강렬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종석을 넘어서느냐 넘어서지 못하느냐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대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이 납치범 역할을 조금이라도 더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생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악역의 행위는 비슷할지언정 사람 자체는 무궁무진하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악역이란 게 사실 그래요. ‘나쁘다’는 것만 빼고는 다 다르거든요. 그 안에서 맛을 찾아내면 될 것 같더라고요. 같은 달걀도 계란 프라이와 계란찜은 맛이 다르지 않나. 나쁜 사람은 종류도 많고 성격도 다양하다.”
김성오의 진심이 통했던걸까. ‘종석’과는 또 다른 독보적인 악역이 탄생했다. 김성오가 맡은 납치범 ‘기태’역은 ‘동철’(마동석)의 아내 ‘지수’(송지효)의 납치범이자 ‘동철’의 본능을 자극하는 정체불명의 인물. 납치한 대가로 오히려 돈을 주는 의뭉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특유의 느긋함 속 철두철미한 계획으로 ‘동철’의 숨통을 조여간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요’란 지수의 대사에 별표를 해논 김성오는 기태의 납치의 목표를 명확히 그려갔다.
기태는 광기와 유연함을 혼재해서 보여준다. 정박보단 엇박에 가깝고 예상이 되지 않는 캐릭터이다. 언밸런스한 리듬감이 지속적 될수록 마동석의 분노게이지는 상승된다.
“기태는 납치 목적을 지수에게 뒀다. 지수의 멘트를 듣고선, ‘그래. 알았어’ ‘한번 가 보자’ 식이죠. 이번 ‘기태’란 인물을 단순한 악인으로 보지는 않았다. 뭐랄까. 철학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이고 생각했어요. 기태를 그렇게 만든 사연이 분명히 있을 거라 봤어요. 아마도 돈 때문에 아픔을 겪었던 기억이 있었다는 걸 기초에 두고 접근해갔어요.”
김성오가 ‘성난황소’를 택한 데는 김민호 감독과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성난황소’ 대본을 받고 나서 김성오는 김 감독을 만나서, 굉장히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납치범 ‘기태’에 생명을 불어넣기까지 ‘몸의 대화’가 이어졌다. 김성오의 표현대로 ‘몸으로 말하는 감독님’에게서 신뢰감이 느껴졌단다.
“기태 역할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님께서 영화 이야기하는 걸 너무 좋아하시고 저 또한 좋아한다. 그래서 정말 쓸 때 없는 얘기라고 할지언정, 저희는 이 ‘성난황소’라는 영화를 두고 많은 얘기를 했다. 소설가나 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글로 100프로 표현이 안 될 때가 있다. 서로 바디 랭귀지를 많이 했다. ‘비열하게 웃는 기태’란 지문 앞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동기 부여를 해줘야 하지 않겠나란 식으로. 그게 영화에 기태 역할을 표현하는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기태의 기발하고 자유로운 사고는 인간 김성오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직접 만난 사람들에게서 얻은 경험치는 물론 엉뚱한 상상들을 머릿 속에 메모해놨다가,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끄집어내오는 편이다. 그는 “문득 문득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지’란 게 떠오른다. 그게 배우로서 재산이고 연기의 원천이다”고 말했다. 정제되지 않은 경험과 상상은 그의 연기를 리드미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기태가 초반 화장실에서 자신의 머리를 빗으로 가볍게 마사지하듯 치는 장면도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기태’의 의상 색깔들 역시 화려하지 않나. 왜 그런 옷을 입는지 나름 합리화시키고자 했다.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일을 할 때 시그니처 옷을 입지 않나. 나 역시 그게 작업복이라 생각했다. 기태의 화려한 의상도 그렇게 접근했다.”
김성오는 “영화 ‘아저씨’ 이후 비슷한 역할만 계속 들어와 그게 너무 싫은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악역만 들어오는 것에 불만 토로하려고 연기하고 있나’란 생각이 들자, 큰 깨달음이 찾아왔다고 했다.
“이젠 ‘악역’만 해도 상관없다. 아니 ‘악역 전문’이란 타이틀이 달리면 이왕 할 거 제대로 해보잔 생각도 들어요. 배우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을 만큼 책(시나리오)들이 주어진다면, 행복한 것 같아요. 배우로서 가장 슬픈 일은 현장이 없는 거잖아요. 제가 생각해보니. 악역이든 뭐든 현장에 있을 수 있다면 배우로서 행복한 것 같아요. 제 꿈은 연기를 아주 오래 했으면 좋겠어요. ”
2016년 아들을 품에 안은 김성오는 ‘아빠’란 타이틀이 하나 더 생겼다. 이는 책임감이란 무게감으로만 자리잡지 않았다. 그의 생각의 폭을 넓게 만들어준 보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머릿 속에 몰래 들어가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도 그의 또 다른 재미다.
“요즘엔 31개월 아이가 어린이 집이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 점을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꼭 놀이터든 마트를 가려고 해요. 어른들의 지레짐작과는 다른 이유를 상상해보는데, 언젠가는 이런 내용을 영상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꿈도 조심스럽게 키워보고 있어요. 연출 적으로 욕심이 있거나 하진 않아요. 결혼하면 새장에 갇히게 된다는 말을 하는데, 그게 다른 쪽으로 생각할 수도 있어요. 내가 가진 날개를 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배우로 살려고 마음먹었다면 안주하면 안 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