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의료비 늘고 내수경기 위축도 초래 우려

영리병원 허용-반대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 재활의학과 전문의

● 건보 효율성 무너지고 인건비 상승으로 연결

● 의료산업에 축복되더라도 다른 제조업엔 악재

● 돈있는 환자만 진료에 부익부 빈익빈 심해져

제주특별자치도가 중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국내 첫 영리병원의 개원 허가를 내주면서 찬반양론이 거세게 맞서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5일 녹지국제병원의 개설을 최종 승인했다. 제주도민 공론화조사위원회의 최종 권고안은 ‘불허’였지만 외국인 관광객만 진료하는 조건으로 개원을 허가했다. 보건의료 시민단체와 노동조합들은 현행법상 환자 진료를 막을 근거가 없어 결국 ‘내국인 진료’도 가능한 영리 병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가 문재인 정부에서는 영리병원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확인했지만 시민단체들은 원 지사의 퇴진까지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영리병원 허용 찬성 측은 이번에 허가받은 병원은 환자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선택적 의료서비스에 국한해 진료비 증가와 공공의료체계 붕괴를 촉발시킬 우려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영리병원이 특정보험 가입자만 진료하는 폐해와 함께 의료비 인상에 따른 가계부담 증가로 내수경기 위축을 불러올 것이라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5일 원희룡 제주지사가 ‘국제녹지병원’을 허가했다. 무려 15년간의 영리병원 허용을 둘러싼 논란 속에 첫 허가다. 원 지사는 영리병원 불허를 확정한 공론조사위 결과까지 뒤엎으며 영리병원을 허가해 민주주의를 짓밟았다는 비판도 듣고 있다. 영리병원 허가의 후폭풍을 원 지사가 몰랐을 리 없다. 숙의형 민주주의의 상징인 공론조사위 결과를 뒤엎으면 자신의 정치생명도 위험해진다는 것을 몰랐을 리도 없다. 하지만 그는 여론과 부딪치더라도 의료산업의 편을 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원 지사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조건을 들어 허가를 했는데 사실 영리병원 허용 자체가 한국의료체계에서 보면 부작용에 해당된다. 첫 영리병원 허가는 국내 역차별 논란, 각종 규제완화 요구의 시발점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 영리병원 허가는 의료기기·제약·보험·병원경영지원·건강증진식품 등 의료산업의 각 부분에 상법상 회사가 아닌 비영리법인만이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조항을 와해시킨다. 현재 각각의 의료산업이 서로 연계하더라도 핵심고리인 병원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은 한국의 의료공공성을 지켜온 핵심규제였다. 특정병원과 노골적인 연계를 추진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영리병원은 건강보험의 지배력 밖에 있어 진료행위는 물론이고 약품·의료기기에 대한 가격도 높게 책정할 수 있고 약품과 의료기기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사용이 가능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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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의료산업 입장에서는 당장 하나만 없앨 규제를 생각한다면 무조건 ‘영리병원 불허’를 거론한다. 여기다 건강보험의 지배력이 없기 때문에 민간보험에 또 다른 시장인 의료보험시장이 제대로 열린다. 영리병원은 환자유인·알선을 민간보험과 결합해 할 수도 있고 특정보험 가입자만 진료하는 병원모델도 설립이 가능하다. 그렇게 된다면 사실상 돈 있는 환자와 돈 없는 환자를 분리할 수 있고 환자들의 계층별 맞춤 투자로 수익성을 더욱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간단히 생각해봐도 영리병원이 확대된다면 가져올 의료산업 확대, 수익성 증가는 부수적으로 분명해진다. 따라서 영리병원 허용은 ‘의료산업’에는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의료산업은 영리병원 허용이 다른 산업에 미칠 영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앞서 살펴본 의료기기, 약품, 민간의료보험의 확대는 동시에 제조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에 대한 소비력 감소를 의미한다. 가뜩이나 높은 교육비·주거비로 가처분소득이 적어 내수경기가 떨어지고 있는 지금 국민들이 꼭 지출해야 하는 의료비가 증가된다면 다른 산업의 내수감소는 뻔한 일이다. 거기다 건강보험이 가지는 효율성이 무너진다면 각종 제조업은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된 비용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즉 이는 불필요한 인건비 상승으로 직결된다. 물론 이렇게 상승한 인건비가 내수진작이 아니고 모조리 의료비에 쓰인다면 더욱더 재앙일 것이다.

독일·프랑스·일본 등 제조업 선진국들에서 의료공공성 확보는 정치철학의 문제일 뿐 아니라 경제적 문제다. 2008년 부동산 파생상품으로 인한 세계 경제위기 때 미국 자동차기업 GM은 자신의 순이익보다 많은 금액을 종업원들의 민간의료보험료로 납부하고 있었고 이것이 매우 심각한 비효율이었음을 경제지 포브스도 지적했다. 도요타·벤츠·BMW가 가진 경쟁력의 일부는 안정적인 의료제도에 있다. 따라서 50병상짜리 작은 영리병원 허용이 미칠 파장은 ‘의료산업’에는 축복일지 모르지만 앞으로 한국경제 전반에는 큰 균열이 될 수 있다.

원 지사에게 영리병원 허용이 의료비 증대, 공보험체계 와해에 이어 종국에는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윤리와 정의의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겠다. 그런 정치철학이 없다는 것을 탓하지도 않겠다. 하지만 의료관광과 의료산업이 국가주도사업도 아닌 한국에서 여타 제조업과 경제순환에 악영향을 줄 ‘영리병원 허가’를 최초로 실행했다는 점은 인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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