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재보험 시장에서 점유율 90%에 달하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20여년 간 경쟁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차단한 코리안리재보험이 수십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내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일반항공보험 재보험 시장에서 잠재적 경쟁사업자의 진입을 막은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로 코리안리에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76억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코리안리는 1999년 4월부터 지난달까지 국내 일반항공보험 재보험 시장에서 모든 손해보험사가 자신하고만 거래하도록 하는 등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를 받는다.
일반항공보험은 구조·산불 진화·레저 등에 이용하는 헬리콥터나 소형항공기가 드는 보험이다. 국내 일반 항공기 380여대는 국내 11개 손해보험사를 통해 이 보험에 가입하고 있으며 시장 규모는 작년 기준 290억원이다. 다만 이 분야는 사고가 나면 지급해야 하는 보험료가 크기 때문에 재보험이 필수적이다. 재보험이란 보험 보상 책임을 다른 보험사에 넘겨 위험을 분산하는 보험을 말한다.
코리안리는 1963년 대한손해재보험공사에서 시작해 1978년 민영화돼 현재에 이르는 국내 대표 재보험사다. 1968년 국내우선제도 등 제도를 이용해 일반항공보험 재보험 시장에서 독점력을 형성했다. 1993년까지는 제도 장벽 때문에 해외 재보험사가 국내 시장에 진입할 수 없었지만, 이후 개방돼 경쟁 시장이 됐다. 그러나 코리안리는 국내 일반항공보험 재보험 시장 2013∼2017년 평균 점유율 88%를 차지하는 사실상 독점사업자 지위를 무려 50년째 유지하고 있다.
공정위는 코리안리가 손해보험사들과 1990년부터 재보험 특약을 맺어 독점적 거래구조를 유지하도록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특약은 재보험 물량 모두를 코리안리를 통해서만 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코리안리는 특약에서 벗어나려 한 손해보험사에는 보험 관련 조달청 입찰 컨소시엄 참가 지분을 줄이도록 하는 등 불이익을 줬다. 해외 재보험사와 국내 손해보험사의 거래를 중개한 한 보험중개사 담당 직원에 대해서는 징계를 요청하는 등 ‘갑질’을 하기도 했다. 코리안리는 여기에 국내 진출 가능성이 큰 잠재적 경쟁자인 해외 업체와는 ‘재재보험’(국내 재보험을 다시 재보험하는 것) 거래처로 잡았다. 이 해외 업체는 코리안리와 관계를 고려해 국내 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공정위는 코리안리의 이러한 행위로 국내 일반항공보험과 재보험 시장의 경쟁이 크게 제한됐다고 판단했다. 우선 잠재적 경쟁 재보험사의 시장 진입 가능성을 봉쇄했고, 경쟁 수준보다 높은 보험료율(사고 시 받는 보험금액 대비 납부 보험료)이 형성된 것으로 봤다. 2016년 6월 공정위가 이 사건 조사를 개시해 요율경쟁이 시작되자, 올해 코리안리가 제시한 평균 요율은 전년보다 65% 아래로 하락한 것이 그 근거다. 그 전까지 코리안리가 제시하는 요율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면서, 최종 소비자가 보험상품을 비교·선택할 기회가 차단됐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공정위는 코리안리에 과징금 76억원을 부과하고, 각 손해보험사와 일반항공보험 재보험 특약 거래조건을 개별적으로 협의해 향후 3년간 재보험·재재보험 거래현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신영호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재보험 시장에서 제도적으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았던 사업자가 재보험 자유화 이후에도 부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유지·강화한 행위를 제재한 것”이라며 “장기간 폐쇄적 거래구조를 유지하여 최종소비자의 희생으로 이윤을 얻은 독점사업자의 남용행위를 제재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도입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은비 인턴기자 silverbi20@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