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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 병풍의 나라’ 기획전을 보고... 새로운 고미술의 조명

[칼럼] 정용호 인사동전통문화보존회 회장(기린갤러리 대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 병풍의 나라’ 기획전(10월3일~12월23일)에 다녀왔다. 실로 오랜만에 사립 미술관에서 열리는 고미술 대기획전이다. 우리 고미술 중 병풍. 그 하나만 가지고도 이런 엄청난 전시가 가능하다는 것이 참으로 획기적이었다.

관계자 말에 따르면 ‘우리 고미술만 가지고서는 전시가 흥미롭지 않다.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술관 1층에서는 ‘설화 문화전 雪花 文化展 - Fortune Land 금박展’이라 하여, 고미술전을 현대 설치 미술과 함께 기획하게 되었다‘라고 한다. 사실 이런 기획만으로도 신선한 전시였다.


병풍전을 둘러보니 지하에 전시된 76점의 병풍은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처음 마주한 금강산 1만2천봉을 표현한 금강산도10폭병풍은 2차원의 평면에 그려진 회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그것의 웅장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마치 금강산 이곳 저곳을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후로도 해상군선도10폭병풍,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 서원아집도8폭병풍, 곤여전도8폭병풍, 태평성시도8폭병풍 등을 지나 끝자락에 전시된 근대작 산수도2폭가리개까지 끊임없이 감동과 전율이 일었다.

우리의 고미술이 재미없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재미있고 무한한 소재와 스토리텔링이 있는 우리 고미술을 그 동안 너무 좁게 해석하고, 전시하고,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번 병풍전을 통해 미술사의 주류에 속하지 못했던 병풍이라는 한 부분적 테마를 재조명해서 끄집어냈다는 점은 실로 참신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병풍이라고 하면 조선 전기 회화전과 같은 큰 주제 안에 곁다리로 전시되는 배경의 일부분 정도로만 생각되었다. 그런 병풍이 전시의 주인공으로 조명을 받자마자 그 웅장한 스케일을 뽐내며 우리 고미술의 중심으로 우뚝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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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병풍은 어떤 회화보다도 선조들의 왕실과 실생활에 깊게 침투해있었다. 넓은 공간을 가르는 가벽용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병풍 앞에 앉은 사람의 지위와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장식품이자 사치품으로도 사용됐다. 혼례 때에도 병풍을 사용했는데,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혼례용 병풍을 대여해주는 기관이 있을 정도였다. 앞서 언급한 금강산도10폭병풍을 보면 작은 두루마리에 몸집을 맞춰 들어가던 회화가 병풍이라는 커다란 매체에 담기기 시작하면서 선조들의 회화를 감상하던 매체와 스케일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논의는 병풍을 재조명하기 시작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미술관이 기획한 관람의 방식 역시 주목할 만하다. 보통 대형 박물관 전시는 전시 공간을 미리 만들어 놓아서 작품이 벽 안으로 들어간 형태이다. 그러다 보니 작품과 관람객의 거리가 적어도 30cm에서 1m내외는 된다. 이번 병풍전에서는 전시 공간을 돌출시켜 관람자가 작품을 매우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의 전시 룰을 깨고 전시 공간을 돌출시킨 이번 전시 효과는 새롭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또 핸드폰 확대기능을 사용해 그냥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부분까지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단안경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맨눈으로만 보면 작품의 디테일을 전시장의 실물에서는 놓치고, 도록으로만 감상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로 관람객들을 고미술 전시로 더 많이 유인하고 작품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유도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조선, 병풍의 나라’전은 그 이름 자체도 근사하고 멋있지만, 이름에 걸맞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병풍들과 아울러 그 기획력이 대단히 뛰어나 보인다. 또한 침체되어있는 우리 고미술 전시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생각된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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