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성난 유럽, '노란조끼'가 쏘아 올린 분노의 공

오스트리아·헝가리 등 유럽 곳곳 반정부 시위 확산

지역·경제·문화적 분열이 불씨 돼

균형점 찾지 못해 흔들리는 유럽 리더십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며 한 달여 전 프랑스 전역에서 발생한 ‘노란조끼’ 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 되고 있다. ‘노란조끼’가 일종의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르면서 그간 쌓아왔던 불만을 토해내는 유럽 국가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헝가리에서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연간 연장근로 허용시간을 250시간에서 400시간으로 확대한 노동법 개정안이 의회를 통과한 뒤 연일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자국 경제의 약점인 노동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유연성을 강화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이점이 될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과 노동계는 이 노동법 개정안이 ‘노예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헝가리가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기록하고 있는데, 연장근로까지 더해지면 노동자를 비인간적인 삶으로 몰아넣을 게 분명하다는 이유다.


헝가리 군중의 외침은 경찰관으로까지 옮겨갔다. 이번엔 헝가리 경찰관들이 매년 5만 시간에 대한 연장근로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헝가리 시위대가 지난 20일(현지시간) ‘노예법’이라 불리는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부다페스트=EPA연합뉴스헝가리 시위대가 지난 20일(현지시간) ‘노예법’이라 불리는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부다페스트=EPA연합뉴스



발칸반도에 자리한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도 수천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부치치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르비아 야권 정당 대표인 보르코 스테파노비치가 지난 달 괴한들에게 피습당했는데, 이 같은 폭력사태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다. 세르비아 야권은 부치치 대통령이 이끄는 포퓰리스트 정부가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회에 공포와 위협의 분위기를 조장해 폭력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1990년대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수십만 명이 사망하는 내전으로 몰고 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정권에서 정보부 장관을 지낸 부치치 대통령은 세르비아 총리를 거쳐 지난해 4월 대선을 통해 대통령에 취임한 인물이다.


이탈리아에서도 강경한 반(反)난민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대 수천 명이 로마 중심가를 점령했다. 이들은 정부가 통과시킨 반 난민법이 외려 음성화된 난민을 더 늘리는 등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모여든 이들은 보수 우파 성향의 내각이 지난 1년간 밀어붙인 반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었다. 올 연말까지 EU(유럽연합) 순회의장직을 맡는 오스트리아는 올해 일련의 강경한 반이민 조치를 취했다. 지난 달에는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 예산을 삭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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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EU 본부 주변에서는 외려 ‘유엔(난민)이주협약’ 참여에 반발한 벨기에 시민 수천 명이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샤를 미셸 총리가 난민을 전향적으로 수용하는 유엔이주협약에 서명하자 “이민자 유입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주 문제에 관한 유엔 차원의 첫 합의인 ‘이주협약’은 각국이 주권과 국제법의 의무를 유지한 채 이주 관련 정책에서 국가 간 협력을 증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경 통제를 느슨하게 만들어 이민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벨기에를 포함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민 정책을 둘러싸고 국내 혼란이 가중되자 샤를 미셸 총리는 결국 자신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방향을 선택했다.

16일(현지시간)벨기에 브뤼셀 EU(유럽연합) 본부 앞에서 현지 경찰들이 반(反)이민 시위대와 대치해 있다. /브뤼셀=로이터연합뉴스16일(현지시간)벨기에 브뤼셀 EU(유럽연합) 본부 앞에서 현지 경찰들이 반(反)이민 시위대와 대치해 있다. /브뤼셀=로이터연합뉴스


이처럼 유럽 곳곳이 성나 있는 이유는 자국 경제를 지지하고 있는 허리라 일컫는 중산층이 계속해서 붕괴 되고 있는 현실에서 기인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일자리와 각종 사회 보장제도가 탄탄했던 유럽은 점차 사라지고 ‘아주 잘 사는 사람’과 ‘아주 못 사는 사람’만 남아 있는 현실에 울분을 토해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근로자들의 일자리는 더 싼 저임금 국가 근로자들에게 넘어가고, 4차 산업혁명 등 각종 기술 발전으로 절대적인 일자리 총량도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먹고 살기는 더욱 팍팍해지지만, 재정난에 빠진 정부는 외려 서민에게 세(稅)를 더 물리는 경우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서민의 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지고 소외감은 더욱 심화 된다. 이 와중에 더 극심한 가난과 폭력 등에 내몰려 도망친 난민들이 자국으로 속속 유입된다. 경제적 박탈감 등으로 이미 잔뜩 날 서 있는 이들에게 난민은 자신이 속한 나라의 복지 혜택과 재정을 좀먹는 이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족주의는 점차 분노와 함께 변질, 왜곡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성난 민심을 달래고 사회를 안정화에 이르게 하는 것은 결국 똑똑한 ‘리더십’이다. 그러나 유럽 곳곳에서 분열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지만, 대다수 국가가 균형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해 흔들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현재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양극화, 도시·농촌 갈등, 이민자 혐오 등의 문제와 그로 인한 리더십의 위기는 나라별로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결국 그 뿌리는 같은 정서에서 비롯된다”며 단순히 진보-보수 간 대립 구도로 바라보고 접근하면 사안의 해결 방안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 평했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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