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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3일’ 거제도애광원, 함께라서 더 따뜻한 겨울 이야기

사진=KBS 제공사진=KBS 제공



23일 방송되는 KBS2 ‘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내 인생의 선물 - 거제도애광원 72시간’ 편이 전파를 탄다.

별을 수놓은 듯 반짝이는 바닷길이 유유히 펼쳐진 거제도 장승포항. 이곳엔 조금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늑한 꿈동산이 하나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거제도애광원. 지적장애인 보호 시설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제과제빵-원예-섬유직조 등의 직업 훈련을 통해 자신만의 미래를 그려 나갑니다. 물론 많이 느리고 많이 서투릅니다. 쿠키 반죽을 하나 찍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바느질 한 땀을 뜨는 데도 수개월의 훈련이 필요하지요.


숫자를 잘 몰라, 저울에 물건의 무게를 달 때도 수치를 읽는 게 아니라 모양을 외워 정도를 가늠합니다. 오래 걸리지만 허투루 일하진 않습니다. 조금 답답하지만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직업’과 ‘자립’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을 얻기 위해 날마다 부지런히 배우고, 익힙니다. 그들에게 직업과 자립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니까요. 자신의 힘으로 삶을 바로 세우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고 간절하게 살아갑니다. 출근을 위해 동이 채 트기도 전 어둑한 새벽길을 30분씩 걸어도, 밭일을 하느라 손에 흙이 잔뜩 묻어도 스스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기쁨에 그들은 오늘도 웃습니다. 주어진 매일을 선물처럼 감사히 여기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이들의 삶 속에 ‘다큐멘터리 3일’이 함께 했습니다.

▲ 거제도애광원

사회복지법인 거제도애광원은 1952년,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한 애광영아원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이화여대 가사과를 졸업한 후 개성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원장 김임순은 6?25 전쟁통에 돌쟁이 딸 하나만 안고 거제 장승포로 피난을 떠났죠. 그 길로 그녀의 운명은 통째로 뒤바뀌게 됩니다.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을 꿈꾸던 엘리트 여성이 전쟁고아들의 억척스런 엄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후 1978년, 애광영아원은 지적 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으로 전환되었고 2018년 현재, 392명의 지적장애인들이 애광원의 보호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애광원은 지적 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애빈, 장애인공동생활가정 성빈마을, 장애인요양거주시설 민들레집, 지적장애 특수교육시설 거제 애광학교, 일반영유아 보육시설 옥수어린이집 등 여섯 가지 기관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올해로 설립 66주년을 맞은 사회복지법인 애광원은 지적장애인들을 장애의 고통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데서 나아가 그들이 더 큰 세상의 일원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훈련을 시행 중입니다.

▲ 오늘의 용기

애광원에 있는 사람들이 새겨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새로운 일 앞에 담대히 맞설 수 있는 용기일 겁니다. 애광원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매일은 도전입니다.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 앞에서 설렘이나 기대보단 두려움이 앞섭니다. 배려와 관용을 바라기에 사회는 너무나 바삐 돌아가고, 사람들의 마음엔 여유가 없습니다.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헤쳐 나가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의 벽은 너무나 높습니다. 하지만 애광원 안에선 얘기가 달라지죠. 이곳에선 자신의 힘으로 도전하고 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데는 선생님들의 사랑과 인내가 있었습니다.

- 수다쟁이 주은미


애광원 내에 있는 카페 윈드밀 테라스의 수다쟁이 주은미 씨는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의사조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길 바라며 제자를 가르치던 선생님의 마음을 몇 번이고 무너지게 만들었죠. 하지만 은미 씨의 용기와 선생님의 끝없는 기다림은 결국 그녀를 변화시켰습니다. 윈드밀 테라스에서 훈련을 시작하며 익숙해진 업무와 반복되는 칭찬에 자신감을 얻은 겁니다. 행동과 몸짓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던 그녀는 어느새 단어를 뱉을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어눌하지만 문장으로도 자신의 뜻을 밝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 느리고 서투르긴 해도 자신의 힘으로 삶을 이뤄나가겠다는 용기가 그들의 오늘을 만들고, 내일을 채웁니다.



▲ 내일의 희망

오늘의 용기는 내일의 희망이 됩니다. ‘자립’의 꿈을 이룬 선배들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훈련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죠. 쿠키 틀을 찍고, 포장 작업을 하는 등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경력 10년이 다 되어가는 배경덕, 주정희 씨. 두 사람은 제빵실 훈련생들에게 있어 롤 모델이나 다름없습니다. 단팥빵 반죽에 소를 넣어 저울에 던지기만 하면, 어김없이 ‘120g’. 포기하고 싶었던 숱한 순간들을 이겨내며 살아온 그들은 이제 달인이 다 됐습니다. 케이크를 만드는 솜씨도 일품이라, 올해 열린 발달 장애인 제과기능대회에 나가 재능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 주정희, 장재호 부부

주정희 씨는 5년 전, 결혼과 자립이라는 두 가지 꿈을 동시에 이루기도 했습니다. 원예농산부에서 일하는 장재호 씨가 바로 그녀의 남편인데요. 두 사람은 각자의 일터에서 일하며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소박하지만 포근한 둘만의 보금자리도 마련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지적장애인들에게 이들 부부와 같이 직장을 갖고 독립을 하는 건 로망이나 다름없습니다. 애광원 사람들은 오늘의 용기를 발판삼아 달라질 내일을 꿈꿉니다.

바늘 귀 하나 꽂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소시지에 반죽을 돌돌 마는 데도 풀었다, 감았다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합니다. 초기에 20명의 식구들과 함께였던 원예농산부는 힘든 일을 기피해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6명만 남았습니다. 이렇듯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아 매순간 새로운 어려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빨리 가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지도 않습니다. 느리지만 함께, 정확히 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대파를 수확하고 손질하는 원예농산부 사람들은 워낙 오래 손을 맞춰온 덕에 지시하는 선생님이 없어도 각자 할 일을 찾아 척척 분업을 해냅니다. 섬유직조부에 들어온 지 6개월 밖에 안 된 아영 씨가 바늘구멍에 실을 넣지 못해 끙끙 거리면, 9년 차 베테랑 정열 씨가 능숙하게 해결해줍니다. 일이 서툰 동료는 핀잔의 대상이 아니라 배려하고 살펴줘야 할 친구입니다. 돕고 도우며 ‘함께’ 가는 삶의 방식을 배우는 이 순간도, 그들에겐 선물입니다.

김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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