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리빌딩파이낸스 2019]경영간섭 넘어 시장가격까지 통제...혁신커녕 생사 갈림길 선 금융산업

車·조선에 면책 특권 등

정부, 대출 적극 독려 나서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 탓

1만명 일자리 잃을 위기도

서울경제신문이 23일 긴급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내년 가장 부담스러운 정부 금융정책으로 ‘가격 규제(77.1%)’를 꼽았다. 우리 금융산업의 가장 큰 장애물로 관치(官治)를 지목한 응답도 74.3%에 달했다.

정부가 금융회사 경영에 간섭하는 정도를 넘어 경영목표와 가격까지 직접 결정하는 수준에 이르면서 금융업계 전체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건전성 문제에는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되 나머지 영역에는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해야 금융회사들도 혁신에 나설 수 있는데 지금은 영업 영역 전반에 걸쳐 ‘가이드라인’이 있다 보니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최근 내년 자금공급 주력산업으로 자동차와 조선업을 선정했다. 이들 업종에 국내 은행들이 집중적으로 자금을 빌려주라고 권고한 것이다. 특히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대해서는 해당 업종 여신 담당 임직원에게 면책 특권까지 주고 자금공급 실적에 따라 성과급도 올려주기로 했다. 부실이 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일단 자금부터 대라고 채근한 셈이다.




시중은행들도 정부 압박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 해당 업종 부품업체를 대상으로 ‘신한 두드림 자동차·조선 상생 대출’을 최근 출시했고 우리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들도 비슷한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한계·취약업종을 돕겠다는 취지에는 수긍하지만 정부가 먼저 나서서 자금공급 목표를 제시하면 자칫 좀비기업의 연명만 길어질 수 있다”며 “이 경우 선제적 구조조정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 더 절실하게 자금지원이 필요한 다른 업종이 자금난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가격개입이 금융회사를 벼랑 끝으로 미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카드 수수료 인하가 이런 경우다. 정부는 지난달 카드사의 수수료 인하 여력이 1조4,000억원에 이른다며 우대수수료 적용을 받는 가맹점 매출 구간을 기존 5억원에서 30억원까지 확대했다. 그러자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국내 신용카드 업종에 대해 즉각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내년 중 국내 카드사들의 신용등급이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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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카드채를 발행해 자금을 끌어오는 카드사 입장에서는 자금조달 비용이 뛰어오르게 된다. 내년 기준금리가 추가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올해와 비교해 최소 10bp(1bp=0.01%포인트) 이상의 추가 비용부담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수입원인 수수료 수입이 떨어진 상황에서 비용까지 증가하면 당기순이익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주요 카드사들은 구조조정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현대카드가 400명의 인력 감축을 추진하고 있고 다른 카드사들도 인력 감축을 포함한 비상 경영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카드사 정규직원에 더해 카드모집인 밴(VAN·결제대행사)사 및 관련 업종을 모두 더하면 내년 중 1만명가량의 고용 감축 도미노가 발생할 것으로 카드업계는 우려한다. 정부가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며 내놓은 대책이 도리어 또 다른 사회적 약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엉뚱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 때문에 금융시장 질서가 흔들리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금융위는 최근 은행 등 금융기관들로부터 매년 3,000억원을 상시 출연해 신용 7~10등급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1조원 규모의 전용 정책대출상품을 내놓기로 했다. 이미 빚을 갚지 않아 신용등급이 떨어진 차주들에게 다시 한번 돈을 빌려줄 창구를 열어주기로 한 셈이다. 이들은 최초 18% 안팎의 금리로 돈을 빌렸다가 이후 매년 1~2%포인트씩 금리 인하 혜택을 받게 된다. 반면 4~6등급 중신용자들이 주로 이용해온 햇살론 등의 금리는 현재 최대 10.5%에서 16% 이상으로 올리기로 했다. 어려워도 돈을 갚으며 신용을 관리해온 서민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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