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리빌딩 파이낸스 2019] 자산 1,600兆지만 예대마진에 안주…후진적 규제에 경쟁력 악화

1부. 위기의 금융, 돌파구는 없나

<중> 숨막히는 규제…도전의식 사라진 금융

각종 규제에 쉬운 주담대만 집중

당기순익 80% 예대마진 '기형적'

세계100대은행 순위 70~80위권

관습에 젖어 결국 '우물안 개구리'

수수료,금리 등 투박한 시장개입도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올해 선정한 세계 100대 은행 명단에 국내에서는 KB국민·신한·NH농협·KEB하나·우리은행 등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10위권의 경제력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70~80위권에 오밀조밀 몰려 있다. 지난달 기준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자산은 830조원, 가계대출 자산은 822조원이다. 총자산이 1,600조원을 넘지만 덩치에 비해 내실은 형편없다. 국내 은행의 평균 총자산수익률(ROA)은 0.41%로 해외은행 평균인 0.76%의 절반에 그친다. 자기자본순이익률(ROE)도 5.75%로 100대 해외 은행의 10.29%와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이다. 씨티은행 등 우리에게 익숙한 유수의 글로벌 은행만 모아놓고 보면 ROE 평균은 15% 이상으로 치솟는데 국내 은행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615A05 국내은행및글로벌은행수익성지표



국내 은행의 경쟁력이 국가 경제력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것은 “이자장사로 앉아서 손쉽게 돈을 번다”는 뿌리 깊은 오해가 한몫한다. 정부가 금융산업을 키우고 싶어도 “전당포 같은 은행을 왜 육성하느냐”는 저차원의 비판이 쏟아져 금융관료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는 정치권과 여론의 비판을 무릅쓰고라도 투자은행(IB)과 헤지펀드를 도입하려 했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같은 금융관료가 있었지만 지금은 청와대와 정치권의 눈치만 살피며 정부 정책을 위해 금융을 수단으로만 여기는 관료들만 득세해 홀대론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더구나 IMF 외환위기 직후 대기업과 대형 은행들이 쓰러질 당시 대규모 공적자금을 받은 게 원죄로 작용하면서 ‘은행은 돈을 벌면 안 된다’는 국민적인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게 됐다. 이렇다 보니 은행이 수익 다변화를 위해 다양한 수수료를 신설하려고 해도 국민적 역풍을 맞는 게 다반사다.

금융을 보는 국민적 인식이 이렇게 후진적이다 보니 금융당국과 정치권도 이를 악용해 관치나 온갖 규제를 양산하면서 금융을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차와 같은 민간 기업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반발 여론이 일지만 금융의 경우 되레 정부 규제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금융은 규제산업이 돼버린 지 오래고, 관료들도 금융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면 제동부터 걸고 보는 분위기가 고착화됐다. 한 전직 금융관료는 “내 임기 중 문제가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은행이 새로운 상품이나 사업을 제안해도 검토해보겠다며 시간을 끄는 게 현재의 금융관료들”이라며 “자기 부서나 부처에 불똥이 튀지 않도록 옆 부서나 다른 부처로 (현안을) 넘기는 것을 잘하는 공무원이 유능한 것으로 통용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규제가 만연하다 보니 당국이 금리나 수수료 등 후진적인 가격개입도 서슴지 않고 있다. 기형적인 토양을 악용해 금융관료는 규제나 지배구조 개입에 이어 시장개입도 정당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조도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안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권과의 교감하에 최고경영자(CEO)를 흔들어대는 등 금융산업 자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는 자조마저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20년 전 금융위기를 겪은 후 우리나라 금융의 DNA는 도전보다는 시스템 리스크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버렸다”며 “금융의 건전성이 좋아졌고 여전히 중요하지만, 경영 자체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굳어지고 새로운 시도는 피하게 되면서 금융이 산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물 안에 갇히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금융이 리스크테이킹을 하면서 새로운 기술기업에 대한 투자에 나서는 등 산업의 젖줄 역할을 해야 하지만 건전성에만 매몰되다 보니 손쉬운 주택담보대출이나 가계대출에만 집중하는 기형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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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관료나 금융회사 모두 규제에 익숙해지다 보니 새로운 뭔가를 시도해볼 생각은 엄두도 못 낸다. 한 예로 국내 은행 전체 당기순이익 중 예대마진으로 발생한 수익은 전체의 80%다. 규제에 막혀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지 않으려다 보니 자연히 예대마진에 과도하게 편중된 영업 방식이 수십년째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면서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이후 10년 동안 국내 은행의 연평균 총자산 성장률은 3.6%로 둔화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평균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5.1%보다 낮은 수치다. 더구나 확실한 담보인 주택으로 앉아서 이자이익을 누리는 게 익숙해지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지난해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 전문은행이 등장하자 덩치 큰 시중은행들이 잠깐이나마 혼란에 빠졌던 것은 국내 금융산업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다.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은산분리 규제 때문에 카카오뱅크의 대주주인 카카오가 산업자본으로 분류되면서 일정 지분 이상을 취득하지 못하게 됐고 유상증자도 어려워 시장을 단기간에 잠식하는 데 장애가 됐다”며 “아이러니하게도 은산분리 규제가 시중은행이 인터넷은행에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도 규제가 진입장벽의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규제가 사라지면 오히려 더 두려워지는 ‘규제 금단현상’에 빠져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은행들도 핀테크 업체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하지만 겉으로 ‘규제혁신’을 내세우는 금융당국은 각종 그림자 규제를 덧칠하면서 “덩치 큰 공룡을 사육하려고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은행의 핀테크 회사 M&A 유권해석이 그림자 규제의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은행이 ‘은행업과 연관성이 깊은 핀테크 업체’에 대해서는 지분 15%를 초과해 보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연관성이 깊다’는 기준이 애매해 은행들이 핀테크 업체를 인수하려고 해도 지난 3년간 수없이 거절을 당했다. 이 때문에 은행장들이 지난달 이낙연 국무총리를 직접 면담하는 자리에서 ‘유권해석 문제’를 제발 해결해달라고 하소연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어찌 보면 단순한 문제인데 국무총리까지 나서야 풀어지는 지경이 되면서 눈에 드러나지 않는 규제를 금융당국이 얼마나 즐기고, 또 은행들도 스스로 적응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 활용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블록체인과 연계한 금융보안 등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보신적인 금융당국이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국내 금융권에서는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금융사들은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소비자들에게 접근하려고 하지만 감독당국에서 반려되는 것이 수없이 많다”며 “건전성과 소비자보호 차원에서의 규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새 상품조차 내놓을 수 없는 환경이라면 문제”라고 비판했다.


손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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